재계 5위 한화그룹의 김동관 수석부회장과 8위 HD현대그룹의 정기선 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최근 1년 사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면서 재계의 관심은 지분 승계와 이를 뒷받침할 자금 마련으로 이동하고 있다.
김 수석부회장은 2026년 8월1일자로 그룹 수석부회장 자리에 오르며 승계를 굳혔고 정기선 회장은 이미 2025년 말 총수에 오르며 오너경영체제를 다시 열었다.
두 사람 모두 경영 차원에서 입지를 굳혔지만 지배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증여와 향후 상속 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금 부담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젊은 두 오너가 경영능력 입증과 함께 지분 확보 및 승계 재원 마련을 위한 장기 레이스에 들어선 모양새다.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지분 승계'라는 마지막 퍼즐을 남겨두고 있다. ⓒ한화 및 HD현대
◆ 한화 향한 실질적 지배력 22.16% 김동관, 증여와 지분교환 남았다
8월5일 재계와 신용평가업계 안팎에 따르면 김동관 수석부회장이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의 지배력을 높이는 수순으로는 증여 및 지분교환 등이 거론된다.
김 수석부회장은 8월3일 기준 한화 지분(보통주)을 10.38%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한화에너지를 통해 간접적으로도 한화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화에너지는 한화 지분을 23.55% 보유한 최대주주인데, 김 수석부회장이 한화에너지 지분을 50% 쥐고 있어 이를 통해 한화에 미치는 지분율은 11.78% 수준이다. 이를 모두 합치면 김 수석부회장의 실질적 한화 지분은 22.16%로 확대된다.
실질 지배력이 20%를 웃돈다는 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그룹의 핵심 계열사를 총괄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김 수석부회장이 승계 0순위임은 분명하다. 다만 직접 보유한 한화 지분이 김승연 회장의 12.04%에 미치지 못하는 만큼 남은 과제는 지분 승계로 보인다.
이에 가장 먼저 이른바 ‘정공법’으로 여겨지는 증여가 거론된다. 앞서 2025년 4월 김승연 회장은 자신이 보유했던 한화 지분 22.65%의 절반가량을 김 수석부회장 포함 세 아들에게 증여하기도 했다. 당시 김 수석부회장은 한화 지분 4.01%를 수증했다.
과거 한화그룹은 총수일가가 비상장사를 활용한 지분거래 및 유상증자, 사업재편 등을 거쳐 그룹을 향한 지배력을 우회적으로 높여왔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이 과정의 마지막 단계로 여겨지는 한화에너지와 한화 사이 합병을 놓고 한화그룹이 지속해서 선을 그어온 만큼 김 수석부회장이 한화 지분을 직접 확보하는 증여가 핵심 과정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과거 한화그룹에서는 2001년 설립한 한화S&C에서 시작해 이 회사가 물적분할한 뒤 존속법인인 에이치솔루션이 설립됐고 이어 한화에너지가 에이치솔루션을 흡수합병하는 과정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김 수석부회장의 50%를 포함해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한화에너지 지분 100%를 모두 보유하는 구조가 한동안 유지됐다. 이 한화에너지는 한화 지분을 꾸준히 매입해 최대주주가 됐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최근 출범한 신설 지주사 한화M&S(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설립과 이어지는 지분교환이 꼽힌다. 한화M&S의 지분 구조는 기존 한화와 동일하게 유지되는데 김 수석부회장이 보유한 한화M&S 지분과 셋째 아들인 김동선 사장이 보유한 한화 지분을 서로 양도하는 방식이다.
김상수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8월4일 한화 인적분할 관련 평가보고서에서 주요 확인 요인으로 ‘추가적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을 들었다. 김 수석연구원은 “이번 인적분할 이외에 추가 지배구조 변경 계획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다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지배주주 사이 독자적 경영활동 강화, 계열 분리 등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계열 전반의 지배구조 변화 등에 관해서는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 정기선 지주사 HD현대 2대주주로, 회장 승진 이후 빠르게 이뤄지는 지분 물려받기
정기선 회장의 지분 승계는 그룹 총수에 오른 뒤로 신속하게 다시 실행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8월4일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사항에 따르면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은 아들인 정 회장에게 그룹 지주사인 HD현대 지분 3.54%를 증여하기로 했다. 이 증여는 9월3일 이뤄진다.
증여가 마무리되면 정 회장의 HD현대 지분율은 6.12%에서 9.67%로 높아진다. 국민연금공단(7.12%)을 넘어 HD현대 2대주주에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정몽준 이사장의 지분율은 26.60%에서 23.05%로 낮아진다.
이번 증여는 2018년 정 회장이 부사장 시절 정몽준 이사장으로부터 증여받은 3040억 원 등의 자금을 기반으로 현대로보틱스(현 HD현대) 지분 5.1%를 확보한 것 이후에 정 회장의 그룹 지배력 확대가 본격적으로 재개되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2018년 이후로 정 회장은 부회장을 지내던 2024년 꾸준히 HD현대 주식을 사들여 지분율을 지금의 규모까지 확대해 왔다.
HD현대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다른 기업집단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흘러왔다. 그동안 정 회장의 세 동생은 HD현대그룹과 무관한 행보를 걸어왔고 정 회장만이 홀로 경영수업을 받으며 역량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2013년 현대중공업 수석부장으로 복귀한 뒤 주로 그룹의 근간인 조선 부문에서 주요 보직을 지내며 경력을 쌓아왔다.
정 회장은 2021년 사장 승진 이후 부회장, 수석부회장을 거쳐 2025년 10월 회장에 올랐고 HD현대그룹은 37년 만에 오너경영체제로 복귀했다.
◆ 조선업에서 촉발된 동년배 절친의 대결구도, 자금 마련은 공통의 관건
1983년생인 김동관 수석부회장과 1982년생인 정기선 회장은 1년 터울의 동년배로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김 수석부회장과 정 회장은 기존에는 승계가 유력한 ‘젊은 오너3세’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돼 왔는데 조선업에서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면서 대결구도가 선명해졌다. 한화그룹이 2022년 9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를 공식화하고 이 절차를 2023년 5월 마무리하면서다.
한화그룹이 2026년 재계 5위로 뛰어오르고 HD현대그룹도 조선업 호황기를 맞이해 역대급 실적을 써내려가는 상황에서 김 수석부회장과 정 회장의 기업가치 제고 경쟁은 향후 재계의 관심사로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가운데 두 오너경영인 모두에게 배당은 꾸준히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창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 수석부회장과 정 회장은 ‘진짜 승계’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증여세 및 향후 상속세 등을 납부하기 위해 막대한 개인자금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다.
김 수석부회장은 2025년 4월 김승연 회장의 지분을 증여받으면서 1천억 원가량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나머지 지분과 관련한 증여세 및 상속세도 발생하고 지분교환이 이뤄지면 양도소득세도 부담해야 할 수 있는 만큼 지분 승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천억 원이 자금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추가로 재계에서는 여전히 김 수석부회장이 한화에너지 지분 50%을 활용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지속해서 거론되고 있다. 한화에너지가 기업공개(IPO)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김 수석부회장이 구주매출을 통해 현금을 확보할 수 있고 상장 뒤 한화에너지-한화 합병으로 추가 지배력 상승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 회장도 비슷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 회장은 아직 승계받지 못한 정몽준 이사장의 보유 지분이 20% 이상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HD현대 지분 3.54% 증여에서만 정 회장은 3500억 원가량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정 회장은 HD현대 이외에는 보유하고 있는 다른 계열사 지분이 극히 소량에 불과한 탓에 증여 및 추후 상속을 통한 정공법이 유일한 승계 방법으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세금 부담이 수천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점진적으로 직접 HD현대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