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교실 문을 두드리면서, 교육 현장에서는 AI 교사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리얼보틱스(Realbotix)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202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5에 전시돼 있다(왼쪽). 교실 자료 사진 ⓒ연합뉴스/픽사베이
미국 뉴욕주 살라망카 교육구는 24일(현지시간) 공식 SNS를 통해 교사와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이 이어짐에 따라 고등학교에 도입하려던 리얼보틱스(Realbotix)의 휴머노이드 로봇 시범 운영 계획을 잠정 보류한다고 밝혔다고 27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이 전했다.
살라망카 고등학교에 도입 예정이었던 로봇 샐리의 가격은 약 5만8000달러(한화 약 8000만 원)에 달한다. 실리콘 피부와 갈색 머리카락을 갖춘 이 로봇은 사람과 유사한 외형을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대화와 표정 표현, 실시간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제조사는 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유도하고, 미래 기술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교육 도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교 측 역시 샐리가 교사를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들이 AI와 로봇 기술을 배우고 체험하는 보조 수단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교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로봇을 배우는 것과 로봇에게 교육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교사들은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이 아니라 학생의 감정과 변화를 살피고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라며, 인간 교사의 역할은 기술로 대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AI 로봇의 '약점' : 기업 윤리와 학생 데이터 보호 논란
논란은 로봇을 개발한 기업의 배경이 알려지면서 더욱 커졌다. 샐리를 만든 리얼보틱스는 2023년 성인용 리얼돌(섹스돌) 제조업체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소재 시뮬라크라를 인수한 이력이 있다.
이에 뉴욕주 교원노조는 23일 성명을 내고 "섹스돌과 연관된 기업이 만든 로봇이 교실에 들어올 자리는 없다"며 도입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 공간에 들어오는 기술인 만큼 기능뿐 아니라 개발 기업의 가치와 윤리성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학생들의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샐리는 학생의 얼굴을 인식하고 음성을 듣는 등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도록 설계됐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얼굴 정보와 대화 내용이 어떤 방식으로 저장되고 활용되는지, 녹음 기능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소프트웨어 보안은 충분히 검증됐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교육 현장에서 학생 데이터를 다루는 만큼, 기술 도입보다 먼저 개인정보 보호 장치와 안전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보다 먼저 필요한 것 : 학생을 이해하는 인간의 역할
멜린다 제이 퍼슨 뉴욕주 교원노조 회장이 7월22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 계정에 글을 올렸다. ⓒ멜린다 제이 퍼슨 엑스 계정
무엇보다 교사들이 강조한 것은 '관계'였다. 멜린다 제이 퍼슨 뉴욕주 교원노조 회장은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구식이라고 해도 좋지만 영화 '터미네이터'를 볼 때마다 나는 늘 인간의 편에 섰다. 교실 역시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움을 겪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성취했을 때 함께 기뻐하며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찾도록 돕는 따뜻한 어른"이라며 "이는 어떤 로봇도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아무리 사람처럼 생기고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로봇이라도 학생의 작은 변화와 감정의 신호를 읽고 성장 과정을 함께하는 역할까지 맡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특히 정서적 위기에 놓인 학생을 지원하려면 휴머노이드 로봇보다 전문 상담 인력 확충과 교사 지원 등 사람을 위한 교육 투자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범사업 대상 학교 선정 과정도 논란이 됐다. 살라망카 고등학교는 아메리카 원주민 학생 비율이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에 일부에서는 충분한 안전성 검증이 끝나지 않은 기술을 왜 원주민 학생들이 많은 학교에서 먼저 시험하려 했느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소수 공동체 학생들이 새로운 기술의 위험성을 떠안는 실험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멜린다 제이 퍼슨 회장은 28일 학교 내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주 차원의 안전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뉴욕주 교육위원장과 교육위원회에 보냈다.
이번 논란은 AI가 교육 현장에 빠르게 들어오는 시대에 어디까지 기술을 허용할 것인지 사회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