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순간적으로 전력망에서 이탈하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단순한 백업 설비를 넘어 전력계통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라는 점이 다시 한번 부각됐다. 전력 변동성을 흡수하는 ESS 시장도 중장기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은 이런 흐름을 발판 삼아 전기자동차(EV) 배터리 중심의 실적 변동성을 줄이고 ESS 배터리를 새로운 성장 축으로 키우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3년 동안 이어진 수익성 하락의 고리를 끊는 흑자전환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북미를 중심으로 한 ESS 배터리 추가 수주가 삼성SDI의 안정적 이익 기반과 기업가치 회복의 핵심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이 에너지저장장치용 배터리로 실적 돌파구를 찾고 있다.
27일 해외언론과 증권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종합하면 AI 데이터센터 확산과 함께 글로벌 전력시장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데이터센터 전문매체 데이터센터다이나믹스에 따르면 지난 22일(현지시각) 미국 최대 전력계통 운영기관인 PJM이 관할하는 전력망에서 3GW(기가와트)가 넘는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순간적으로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북부 버지니아 송전선로에 이상이 발생하자 이 지역 데이터센터들이 서버를 보호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전력망에서 분리된 뒤 백업 전원으로 전환한 데 따른 것이다.
데이터센터 입장에서는 정상적 보호 조치였지만 전력망에서는 3GW, 전체 3% 규모에 이르는 전력수요가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전압과 주파수가 크게 흔들렸다.
전력계통은 발전량과 소비량이 실시간으로 균형을 이뤄야 하는 만큼 급격한 수요 변동을 흡수할 수 있는 대응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AI 데이터센터가 급증할수록 전력 변동을 흡수할 ESS의 역할도 더욱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7일 전력·배터리 주간보고서에서 "이 사태는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문제가 발전소와 송전망을 더 짓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AI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증가는 계통에 새로운 부담인 만큼 앞으로 전력 인프라 투자는 발전·송전설비 중심에서 ESS와 계통 제어 솔루션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PJM는 2026년 초 보고서에서도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앞으로 10년 동안 전례 없는 전력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는 전력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ESS의 중요도가 더욱 부각될 수 있는 전망이다.
이처럼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ESS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는 흐름은 최주선 사장이 삼성SDI의 중장기 성장동력으로 ESS 사업을 확대하는 데 우호적 환경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 사장은 중대형 전지에서 전기차와 ESS, 소형전지, 전자재료 등 주요 사업 가운데 ESS의 성장성을 가장 높게 평가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SDI도 미국에서 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에 따라 전력용 ESS의 수요가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에서도 중앙계약시장 및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 ESS 사업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중앙계약시장은 전력망 안정화를 위해 전력거래소가 ESS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조달하는 제도다.
이를 바탕으로 최 사장은 삼성SDI의 미국 현지 양산 역량을 갖추는 등 전력용 ESS 사업을 확장하고 국내에서도 물량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SDI는 미국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스텔란티스와 합작법인인 스타플러스에너지에서 2025년 10월 기존 전기차용 제품 생산라인을 전환해 삼원계(NCA, 니켈·코발트·알루미늄) 배터리를 생산한 데 이어 2026년 4분기부터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ESS용 제품 공급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최 사장은 7월1일 삼성SDI 56주년 창립기념식에서 고부가 신산업 분야의 선제적 대응을 최근 대표적 성과로 꼽으면서 가장 먼저 ‘ESS 프로젝트 수주’를 꼽기도 했다.
삼성SDI는 2025년 하반기 미국의 에너지 관련 인프라 개발·운영기업과 2조 원을 웃도는 규모의 공급계약을 맺은 데 이어 2026년 상반기에도 미국 메이저 에너지 전문기업에서 1조5천억 원가량의 ESS 배터리 수주를 확보했다.
이외에도 삼성SDI는 다수의 글로벌 고객들과 ESS 배터리 공급계약을 협의하고 있어 추가로 가시적 성과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 사장에게는 ESS 배터리의 꾸준한 수주가 임기 동안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최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고유가 기조로 전기차 수요 회복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ESS 배터리는 불확실한 전기차 업황과 별개로 이미 빅테크들이 직접 나선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힘입어 안정적 수요를 확보한 ‘안전판’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삼성SDI는 2022년 영업이익 1조8080억 원을 고점으로 2025년까지 3년 연속 수익성 하락일로를 걸었다. 2025년에는 1조7천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보기도 했다. 전기차 배터리 업황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흔들렸던 삼성SDI로서는 ESS 배터리가 실적 하락 변동성을 줄여줄 사업이기도 한 셈이다.
삼성SDI는 7월30일 실적발표를 앞두고 최근 2분기 수익성이 당초 기대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다만 그 안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가동률 상승과 함께 ESS 추가 수주가 향후 기업가치 회복에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다.
7월20일 신한투자증권 등을 포함해 7월 들어 삼성SDI 분석보고서를 낸 복수의 증권사들은 삼성SDI가 2분기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7개 분기 만에 흑자로 돌아서는 것으로 영업이익 규모는 100억 원대로 크지 않지만 기존 시장 기대치(영업손실 449억 원)를 뒤집고 최 사장이 예상했던 2026년 하반기 흑자전환보다 빠르게 반등에 성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20일 보고서에서 삼성SDI의 2분기 영업이익을 143억 원으로 추정하며 주요 요인을 미국 스타플러스에너지 생산 물량의 판매 및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수령 확대 등을 꼽았다.
이 연구원은 “삼성SDI는 2분기 흑자전환을 시작으로 하반기 실적 반등(턴어라운드)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업가치 회복을 위해서는 북미 ESS 배터리 추가 수주 등을 통한 중장기 이익 창출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