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전쟁범죄자”라고 비판하며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 집행을 촉구했다.
이에 네타냐후 총리는 “근거 없는 혐의를 퍼뜨리고 뉴욕 시민들을 분열시키며 증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조란 맘다니 뉴욕 시장(왼쪽),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로이터/AP/연합뉴스
네타냐후 총리는 2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폭스뉴스에 출연해 “유엔(UN) 연단에 올라 진실을 말하고 이스라엘과 미국 이스라엘 동맹을 위해 연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오는 9월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할 예정이다.
앞서 맘다니 시장은 이번달 18일 뉴욕타임스(NYT) 제작 프로그램인 '더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오는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찾을 경우 ICC 체포영장 집행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후 법률 검토를 거쳐 뉴욕시가 독자적으로 영장을 집행할 권한은 없다고 인정했다. 대신 미 연방 당국이 체포영장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맘다니 시장은 22일 엑스(X, 옛 트위터)에 공개한 영상에서 “네타냐후는 전쟁범죄자이며 팔레스타인 국민을 상대로 한 끔찍한 집단학살의 설계자”라고 비판했다.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22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에 올린 게시물을 통해 네타냐휴 이스라엘 총리가 전쟁범죄자라 주장하고 있다. ⓒ조란 맘다니 엑스 계정
국제형사재판소(ICC)는 2024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ICC는 이들에게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혐의를 적용했으며, 혐의에는 ‘전쟁 수단으로서 기아를 이용한 행위’, ‘살인·박해·기타 비인도적 행위’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모두 국제형사재판소(ICC) 회원국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ICC에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해 왔으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달 들어 다른 국가들의 ICC 이탈을 압박하면서 “ICC를 해체하겠다”고 위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2025년 2월 4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맘다니 시장의 발언이 뉴욕에서 더욱 큰 정치적 파장을 낳은 배경에는 도시가 가진 특수한 인구 구성과 역사적 맥락이 있다. 뉴욕은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세계 최대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된 도시로, 약 96만 명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다. 그만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뉴욕 정치에서도 깊은 역사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쟁점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전쟁과 인권 문제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로 받아들였지만, 일부 유대계 사회에서는 이스라엘 비판이 반유대주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우간다 출생 이민자에서 뉴욕시장까지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6월2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뉴욕시 프라이드 행진(NYC Pride March)에 참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 외교 갈등의 한복판에 선 30대 뉴욕시장 맘다니는 누구일까. 맘다니는 네타냐후 발언 하나로 새삼 국제적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전부터 미국 진보 정치의 새로운 얼굴로 주목받아온 인물이다.
조란 맘다니는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태어난 인도계 무슬림 이민자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우간다 출신의 저명한 학자 마흐무드 맘다니이며 어머니는 영화 ‘몬순 웨딩’ 등으로 알려진 인도계 영화감독 미라 네어다. 이후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성장한 그는 이민자 도시 뉴욕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시장 선거 과정에서 맘다니 시장은 이슬람 혐오성 공격과 모욕에 시달렸다. 맘다니 시장은 높은 임대료와 생활비 부담, 주거 불안을 주요 정치 의제로 내세우며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지만 정작 노동자와 서민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도시가 됐다”고 지적해왔다. 뉴욕의 높은 집값과 물가에 지친 젊은 유권자와 진보층은 그의 메시지에 호응했다.
트럼프에 맞서는 미국 진보의 새얼굴?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이 7월7일(현지시각) 뉴욕에서 붕괴 위험으로 주민들이 대피한 235 이스트 42번가 건물과 주변 건물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맘다니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뚜렷한 대립각을 세워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맘다니를 “뉴욕에 나쁜 소식”이라고 비난하며 그를 급진 좌파로 규정했다. 맘다니가 시장에 당선될 경우 뉴욕에 대한 연방 지원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맘다니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를 부유층과 권력층을 위한 정치로 규정하며, 높은 집값과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는 뉴욕 시민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민자 출신인 그는 트럼프의 강경한 이민 정책에 반대하며, 뉴욕이 이민자와 노동자들이 함께 만들어온 도시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맘다니 시장의 부상은 미국 대도시 정치의 흐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감당하기 어려운 집값과 생활비에 직면한 유권자들이 기존 정치권보다 일상의 문제 해결을 앞세운 젊은 진보 정치인에게 표를 던졌다는 의미다.
또한 맘다니는 미국 정치 무대의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백인·기성 정치인이 주도해온 미국 대도시 정치에서 우간다 태생의 인도계 무슬림 이민자 출신 정치인이 뉴욕시장에 오른 것은 이민자와 젊은 세대가 미국 정치의 새로운 주체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