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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평생 한번이라도 섭식장애 진단을 받는 사람은 약 288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여성의 발병 위험이 가장 높다. 거식증과 폭식증, 폭식장애는 흔히 십대 여성에게 생기는 문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중년 여성에게 섭식장애가 처음 생기거나 어린 시절 증상이 재발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학교가 2019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섭식장애 치료를 받았던 사람의 약 절반 정도가 재발을 경험한다.

온라인에서는 폐경기나 폐경 이행기 여성에게 섭식장애가 발생하는 현상을 '메노렉시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폐경을 뜻하는 영단어 '메노포즈(Menopause)'와 거식증을 뜻하는 'Anorexia(애너렉시아)'를 합친 말이다.

[허프 US] 10대만의 병이 아니다 : 폐경·노화·다이어트 문화가 부추기는 중년의 섭식장애 '메노렉시아'
폐경과 남성 갱년기 등 중년의 신체 변화는 섭식장애를 촉발할 수 있다. 끼니 거르기와 과도한 운동이 '건강 관리'로 포장돼 증상 진단을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AI 생성 이미지.

지금까지 성인 섭식장애는 관련 연구나 치료 현장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미국 섭식장애 치료기관 렌프루 센터에서 임상 대외협력과 교육을 담당하는 심리학자 서맨사 디카로는 실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년 환자도 젊은 환자와 똑같은 기준으로 섭식장애 진단을 받는다. 음식 섭취를 극도로 제한하거나 폭식과 제거 행동을 반복하는 등 겪는 증상도 같다." 팟캐스트 '올 보디스 올 푸드스'도 진행하는 디카로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점은 신체 불만과 이상 섭식을 촉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중년 특유의 변화다. 폐경과 이혼, 자녀의 독립으로 찾아오는 '빈 둥지', 만성질환과 신체 변화, 연령차별적 사회에서 나이 들어가며 겪는 어려움 등도 따른다."

중년에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문제의 뿌리가 수십 년 전부터 이어졌다고 말한다.

디카로는 "청소년기부터 음식이나 몸매 콤플렉스로 어려움을 겪다가 나이가 든 뒤에야 임상적 섭식장애로 악화된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40~50대가 될 때까지 자신의 몸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는데 갑자기 몸과 음식에 집착하기 시작한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는 낯설고 불안한 변화다.

"중년의 섭식장애는 상당수 알아차려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섭식장애 환자의 모습과 다르기 때문이다."

전연령대에 비대면 섭식장애 치료를 제공하는 회사 '이큅'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임상책임자인 에린 파크스에 따르면 이 플랫폼의 성인 환자 가운데 25% 규모가 40~65세다.

이큅은 올해 초 중년층의 섭식장애 실태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40세 이상 성인 1000여 명을 조사했다. 파크스가 가장 주목한 결과는 여성 응답자의 35%가 중년이 된 뒤 처음으로 이상 섭식 행동을 보였다고 답한 것이다. 과거 증상이 재발한 것이 아니라 중년에 처음 발병했다는 뜻이다.

파크스는 허프포스트에 "마른 몸을 곧 건강한 몸으로 여기는 다이어트 문화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며 "이 때문에 끼니를 거르거나 지나치게 운동하고 '간헐적 단식'을 비롯한 제한적 식이요법을 하는 행동도 '건강 관리'로 포장돼 쉽게 간과된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훨씬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도 예외는 아니다.

파크스는 "남성의 39%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몸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졌다고 답했다"며 "그런데도 중년 남성의 섭식장애 증상은 여성보다 더 쉽게 무시되거나 다른 문제로 오인된다"고 말했다.

남성에게도 중년의 신체 변화는 큰 부담이다. 테스토스테론은 25세부터 해마다 약 1%씩 줄어들다가 중년에 접어들면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진다. 그 결과 복부 지방은 늘고 근육과 활력은 줄어든다.

파크스는 폐경과 남성 갱년기에 나타나는 호르몬 변화가 중년 이후 섭식장애를 촉발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은 폐경을 거치며 에스트로겐 수치가 약 60% 감소하고, 프로게스테론은 거의 생성되지 않게 된다.

그는 "체중 증가와 감정 기복, 내 몸을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상실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의 무심한 말이 중년의 섭식장애를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고지혈증이나 고혈압, 혈당 상승 같은 질환을 치료하려면 무조건 체중부터 줄여야 한다고 지나치게 강조할 때다.

심리학자이자 로스앤젤레스 섭식장애 치료센터를 운영하는 로런 뮬하임은 자신을 찾아오는 중년 내담자 가운데 상당수가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식단과 운동에 집착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식이조절과 운동이 오히려 섭식장애를 촉발할 수 있다"며 "체중 감량이 아니더라도 질환을 관리할 방법은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마른 몸뿐 아니라 젊음까지 찬양한다는 점도 문제다. 디카로는 중년층이 날씬함과 젊음을 동시에 요구받는 '이중 압박'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섭식장애는 어느 한가지 원인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디카로는 "삶의 취약한 시기에 여러 위험 요소가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섭식장애가 발생한다"며 "중년에게는 폐경과 원하지 않는 외모 변화, 만성통증, 슬픔과 상실, 연령차별로 인한 상처 등이 주요 스트레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섭식장애는 단순히 음식이나 체중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감정과도 깊이 연관된 질환이기 때문에 치료 역시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 조절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디카로는 말했다.

그는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자신에게 섭식장애가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디카로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전한 조언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도움을 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허프 US] 10대만의 병이 아니다 : 폐경·노화·다이어트 문화가 부추기는 중년의 섭식장애 '메노렉시아'
시간이 흐르고 호르몬이 달라지면서 몸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전문가들은 젊은 시절이나 타인의 몸과 비교하기보다 지금까지 몸을 통해 쌓아온 경험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AI 생성 이미지.

 

몸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몸의 변화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면 지금의 몸을 젊은 시절이나 다른 사람의 몸과 비교하지 말고, 내 몸 덕분에 지금까지 무엇을 경험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라고 뮬하임은 조언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몸이 변하는 것이 정상이며 호르몬이 크게 달라지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며 "건강하지 않은 것은 내 몸이나 먹어야 할 음식,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다. 이런 집착은 너무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섭식장애 전문가를 찾아라

섭식장애는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심각한 질환으로, 전문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디카로는 증상이 의심된다면 먼저 검사를 받아 자신의 신체적·정서적 상태에 맞는 치료 방법과 강도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체중 감량만을 목표로 삼지 않는 섭식장애 전문 치료사나 영양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직장과 가족을 돌보면서 치료받아야 하는 중년층에게는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비대면 치료가 특히 효과적이다.

섭식장애는 혼자 고립돼 있을수록 악화한다. 반대로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회복에 큰 힘이 된다고 렌프루 센터의 임상 대외협력 및 교육 책임자인 심리학자 서맨사 디카로는 말했다.

 

혼자 감당하지 마라

섭식장애는 고립 속에서 더 심해진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은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고 디카로는 강조했다.

그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지원 모임에 참여하거나 팟캐스트에서 다른 사람의 회복 경험을 듣고, 중년의 섭식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쓴 회고록을 읽어보라"며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년의 불안을 파고드는 다이어트 광고를 경계해라

파크스는 중년층을 겨냥해 "노화를 되돌릴 수 있다"거나 "예전의 몸을 되찾을 수 있다"고 약속하는 다이어트 문화의 메시지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이런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흔해졌다"며 "삶의 큰 변화를 겪으며 취약해진 사람에게는 특히 섭식장애를 촉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신 유행 다이어트로 노화하는 몸을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자연스러운 삶의 변화를 겪는 몸을 다정하게 돌보고 지지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허프포스트코리아는 미국 허프포스트와 제휴를 통해 기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번역·정리 강서원 허프포스트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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