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였던 미래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됐다. 신기술은 상상을 현실로 바꾸며 삶을 더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혁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으니, 인류를 위한 기술은 어느새 범죄와 조작,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도구로 악용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누리는 첨단 기술은 지금 어떤 위협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신기술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부작용을 낳는다. AI 이미지.
지난 7일(현지 시각) 호주 매체 ABC와 영국 매체 더선 등에 따르면 인플루언서 릴리 제이는 자신의 이슬람 개종 과정과 국제 구호 활동을 담은 영상을 SNS에 올리며 인스타그램에서만 약 300만 명에 가까운 팔로워를 확보했다.
그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릴리 제이 재단' 계정에는 우간다와 네팔, 수단, 가자지구 등에서 어린이들에게 음식과 의류, 교육을 지원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들이 꾸준히 게시됐다.
그러나 ABC 검증팀은 릴리 제이의 콘텐츠 일부에서 AI 생성 및 조작 흔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릴리 제이가 홍보했던 '2026 호주-글로벌 인도주의 리더십 우수상'의 수상 장면 역시 AI로 만들어진 이미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AI 생성 콘텐츠가 기부와 구호 활동 홍보에 활용되는 시대를 맞아 실제 현장 활동 여부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
호주 출신 유명 인플루언서 릴리 제이가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아동 이미지와 조작된 영상을 이용해 자선 활동을 홍보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호주 ABC 방송 캡쳐
AI가 가져온 부작용은 이것만이 아니다. 이제는 익숙한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 음성을 정교하게 모방한 보이스피싱, 허위 영상과 사진을 활용한 여론 조작 등 AI 기술은 이미 다양한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또한 신기술의 부작용은 AI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모든 기술은 언제나 편리함과 위험성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인터넷은 사이버 범죄를 낳았고, 스마트폰은 디지털 중독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모든 기술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혁신이 굉장한 것일수록 부작용도 그만큼 크다.
이에 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이를 안전하게 활용하기 위한 윤리와 제도, 사회적 합의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3D 프린터가 만든 '유령총'의 등장
항공보안 세미나에 전시된 3D프린터 권총. ⓒ연합뉴스
3D 프린팅 기술은 의료와 제조업, 교육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우려되는 기술 중 하나로도 꼽힌다. 바로 총기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3D 프린터로 제작한 총기가 향후 범죄조직이나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의 '선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2024년 12월 미국 최대 건강보험사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브라이언 톰슨 최고경영자(CEO)를 살해한 루이지 만조니는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작한 사제총기를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범죄는 총기 제작의 진입장벽 자체를 크게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특히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3D 프린팅 총기를 이용한 중대 범죄 사례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관계 부처의 대응책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3D 프린팅 총기는 흔히 '유령총'으로 불린다. 일반 총기처럼 일련번호가 없고 부품을 여러 장소에서 나눠 제작할 수 있어 추적이 쉽지 않다. 범죄 발생 이후에도 제작 경로를 확인하기 어려워 수사와 단속에 어려움이 뒤따를 수 있다.
드론, 하늘 위에서 시작된 사생활 침해
비행하는 드론. ⓒ연합뉴스
군사용 장비로 알려졌던 드론은 2020년대 초반에 들어 취미와 촬영, 산업 현장 등으로 빠르게 보급되며 새로운 영상 촬영 문화를 만들었다. 특히 일반인도 손쉽게 고품질 항공 영상을 촬영할 수 있게 되면서 콘텐츠 제작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드론의 확산은 사생활 침해라는 새로운 문제도 함께 낳았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접수된 드론 관련 민원은 총 1276건으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드론 비행으로 인한 불편사항'이 30.8%를 차지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상당수는 주거지 인근 비행이나 사생활 침해에 관한 민원이었다.
실제 사례도 잇따랐다. 2017년 대전에서는 한 여성이 드론이 집 창문 가까이 접근해 몰래 촬영하는 것 같다는 신고를 했고, 2020년 부산에서는 40대 남성이 드론으로 고층 아파트 주민들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해 구속됐다. 2023년에는 서울 마포구의 한 고층 건물 주변에서 드론을 띄워 여성의 신체를 불법 촬영한 남성이 적발돼 SD카드 포렌식까지 진행됐다.
이 같은 실생활 범죄로 2026년 현재 불법 비행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규제는 과거보다 크게 강화됐다. 그럼에도 드론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촬영 장비라는 특성 때문에 기존 CCTV나 고정형 카메라를 중심으로 설계된 법체계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촬영 위치와 침해 범위 등을 둘러싼 법적 판단에도 여전히 혼선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다크웹, 익명성이 만든 또 다른 범죄 공간
독일 경찰이 2020년 공개한 한 다크웹 사이트의 벙커. ⓒEPA=연합뉴스
인터넷의 '심해'로 불리는 다크웹 역시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뒷골목이다. 일반 웹사이트가 검색엔진을 통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다크웹은 검색엔진에 노출되지 않으며, 특수 브라우저와 익명화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일반 웹이 HTTP·HTTPS 뒤 '.com'으로 끝나는 것에 반해, 다크웹은 무작위 영숫자 조합과 '.onion'과 같은 특수 주소 체계를 이용한다. 이 같은 주소는 서비스 운영자가 이용자에게 직접 주소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접근 권한을 제한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존재 자체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다. 당연히 포털에도 해당 주소는 노출되지 않는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는 다크웹이 신원과 IP 주소를 숨기도록 설계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추적이 어렵고, 이 때문에 마약 거래와 아동 성착취물 유통, 신분도용, 금융사기 등 각종 불법 행위에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언급한 미디어에 자주 언급된 범죄들 외 최근에는 국가안보와 기업 보안까지 위협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26년 5월 발표된 다크웹 침해사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민간기업과 정부기관, 군사 조직을 대상으로 탈취한 데이터가 거래되거나, 해킹을 위한 초기 접근 권한이 다크웹에서 광범위하게 판매되는 정황이 확인됐다. 사이버 범죄가 개인을 넘어 국가와 산업 전반을 겨냥하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과학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AI와 드론, 3D 프린팅, 익명 네트워크 모두 본래는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등장한 기술들이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악용하는 방식이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혁신을 가로막지 않으면서도 기술 발전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감시 체계를 얼마나 빠르게 마련하느냐는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