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과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하며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이번 판결은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 사용자성을 둘러싼 대법원의 판단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만 개정법 시행 이전 사건에 종전 법리를 적용한 사례인 만큼, 개정 노조법에 따른 원청의 교섭 의무를 부정한 판결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이 9일 CJ대한통운의 원청 교섭의무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사진은 CJ대한통운 배송차량. ⓒ연합뉴스
대법원 3부는 9일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개정 노조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건인 만큼 종전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2020년 전국택배노동조합이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이를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했고, 1·2심 법원도 "원청이 택배기사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한다"며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단체교섭 거부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5월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한 법리를 그대로 적용했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개정 노조법 시행 이전에 발생한 사건은 종전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고, 이번 사건 역시 그 연장선에서 CJ대한통운의 교섭의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근거로 사용자성을 인정했던 하급심 판단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폭넓게 인정했던 대표적 판례가 대법원 단계에서 뒤집히면서, 개정 노조법 이전에 발생한 유사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이번 판결의 법적 파급력을 개정 노조법 이후 사건으로 확대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건은 개정법 시행 이전에 발생해 구 노조법이 적용됐지만, 올해 3월 시행된 개정 노조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청도 사용자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대법원 역시 이번 판결에서 개정법이 아닌 종전 법리를 적용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구법이 적용되는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법리를 재확인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원청 사용자성의 범위와 교섭 의무를 최종적으로 정리한 판결로 보기는 어렵다. 향후 개정 노조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 법원이 어떤 기준을 제시할지가 원청 사용자성 논란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판결 직후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를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 판결"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대법원이 구 노동법을 근거로 판단했지만 이미 노조법이 개정돼 민간 택배사들의 원청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부질없는 퇴행 시도"라고 주장했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은 "오늘 판결은 지나간 구법에 기초한 해석일 뿐"이라며 "개정 노조법에 따른 원청 교섭이 중단되거나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며, 택배노조는 원청 교섭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