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역대급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메모리반도체의 슈퍼사이클(초호황)이 점차 둔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증권사 목표주가도 1년7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 확대가 업황 둔화 국면에서도실적 개선세를 이어가고 ‘초격차’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6년 7월7일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서 미국 출장길에 오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7월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전체 실적을 견인하는 반도체(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이 하반기에도 견조한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지만 메모리 업황 호황세가 둔화하면서 당초 예상됐던 만큼의 폭발적 이익 성장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7일 삼성전자는 연결기준 영업이익 89조4천억 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17조 원가량의 성과급 충당금을 반영했음에도 90조 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거둔 것이다.
실적발표 뒤 증권업계에서는 3분기 삼성전자의 연결기준 영업이익 전망치를 최소 110조 원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급은 단기에 늘어날 수 없지만 인공지능(AI) 고도화에 따라 수요는 지속해서 늘고 있는 메모리 시장의 속성이 삼성전자 실적 개선의 근거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8일 삼성전자 분석보고서에서 “하반기 영업이익은 3분기 110조 원, 4분기 124조 원 등 2025년 하반기보다 627% 증가한 234조 원으로 예상돼 ‘깜짝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이 기대된다”며 “2028년 상반기까지 공급 증가는 극히 제한적인 반면 메모리 수요는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 하반기부터 (고객사들의) 메모리 확보 경쟁은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목표주가도 55만 원에서 60만 원으로 높여 잡았다.
삼성전자 목표주가는 2024년 말 이후 대개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실제 삼성전자 주가도 종가 기준으로 2024년 11월14일 4만9900원을 저점으로 현재 30만 원 안팎까지 급등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역대급 실적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목표주가 하향 보고서가 나온 것이 시선을 모은다.
8일 키움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기존 43만 원에서 39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키움증권은 2024년 12월10일 이후 1년7개월 만에 처음으로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내려 잡은 것이다.
근거는 메모리 산업이 그간 초호황 국면만을 나타냈던 것과 달리 변화가 감지된다는 데 있다.
키움증권도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을 112조 원으로 예측했지만 향후 메모리 가격 상승률이 한풀 꺾일 것이라는 데 주목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한 2분기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률은 각각 50%, 7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는데 3분기 상승률은 대폭 축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등 부품 가격 상승으로 PC 및 스마트폰 기업들의 메모리 확보 전략이 추가 구매에 관해 보수적으로 돌아서고 있다”며 “이에 하반기 메모리 가격 상승률은 이전보다 낮아지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3분기 주당순이익(EPS) 성장세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바라봤다. 이 분석보고서에서 제시된 직전 분기와 비교한 3분기 가격 상승률은 D램이 6%, 낸드가 7%다.
이는 최근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의 예측과 일맥상통한다. 트렌드포스는 기저효과, 고객사의 수용 한계 도달 등을 이유로 3분기 D램 및 낸드 가격이 2분기보다 각각 15%가량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에는 ‘거품론(버블)’이 다시 제기되는 등 AI 투자를 둘러싼 부정적 전망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메타가 잉여 컴퓨팅 자원을 활용해 클라우드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공식 발표를 내놓으면서 나온 AI 거품론은 6일(현지시각)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메모리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 상향 곡선이 완만해질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더욱 불이 붙었다.
종합하면 삼성전자 호실적의 배경인 ‘반도체 초호황’이 예상보다 길지 않을 수 있다는 점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이 회장에게는 HBM 점유율 확대가 반도체 업황 둔화라는 사업 환경을 돌파할 핵심으로 꼽힌다. 메모리 시장이 변곡점을 맞는 가운데 HBM이 삼성전자의 실적과 펀더멘털을 동시에 뒷받침할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어서다.
HBM은 삼성전자가 향후 실질적인 실적 개선세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D램 가격 상승률이 둔화하더라도 HBM 판매 확대를 통해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7월8일 삼성전자 분석보고서에서 "트렌드포스는 3분기 D램 가격 상승률이 15%대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HBM4 가격 상승을 고려할 때 블렌디드 ASP(제품 구성을 반영한 평균판매가격)는 예측보다 양호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다만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아직은 SK하이닉스에 밀려 '초격차'라는 단어를 당연하게 쓰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1분기 매출 기준 HBM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8%로 1위를 유지했고 삼성전자는 21%로 마이크론과 함께 2위에 위치했다.
여전히 SK하이닉스와 격차가 크지만 삼성전자는 1년 전보다 점유율을 8%포인트 높였고, 2월 HBM4(6세대)를 세계 최초로 양산 출하한 데 이어 5월에는 HBM4E(7세대)도 업계 최초로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하며 반전에 시동을 걸고 있다. HBM4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유입되는 하반기부터는 삼성전자가 시장 지배력을 높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HBM은 향후 삼성전자의 '초격차' 지위를 다시 확고히 할 열쇠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초격차는 지금까지 삼성의 대표적 경영 키워드일 뿐 아니라 삼성의 경쟁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아 왔다.
이 회장도 1월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숫자(실적)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며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2025년 하반기부터 실적이 급격히 개선됐음에도 근본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 즉 '초격차' 역량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회장은 7일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 리더들이 모이는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변화 기류가 감지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성장동력을 한층 강화할 계기인 셈이다.
이 회장은 선밸리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미국에서 주요 고객사들을 잇따라 만나 HBM을 비롯한 AI 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