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250번째 독립기념일이었던 지난 7월4일(현지시각) 수도 워싱턴D.C.에서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화려한 불꽃놀이가 아니라 지하철 객차 안에서 포착된 한 장의 사진이었다.
로이터 기자 체니 오어가 담아낸 이 장면은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가 마주한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2026년 7월4일(현지시각)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일 미국 워싱턴 D.C. 지하철에서 극우단체 애국자 전선(Patriot Front) 회원들이 열차에 탑승한 가운데 한 승객이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속에는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젊은 흑인 여성이 홀로 앉아 있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것은 남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 캡 모자에 흰 복면을 착용한 남성들이다. 이 남성들은 미국의 극우 백인우월주의 단체 '애국자 전선(Patriot Front)'의 회원들이다.
이 사진은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 속 저항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1955년 버스에서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체포되며 민권운동의 불씨가 된 흑인 로사 파크스, 1957년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 통합 입학 과정에서 백인 반대자들의 야유 속에서도 학교로 향했던 흑인 엘리자베스 엑퍼드 모습이다.
시대와 상황은 달랐지만, 세 장면은 모두 한 개인이 사회적 혐오의 한복판에 놓인 순간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강한 상징성을 가진다.
미국 백인우월주의 극우단체 애국자 전선(Patriot Front) 회원들이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 행사에 앞서 2026년 7월4일 토요일 워싱턴D.C.을 마스크를 쓰고 행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애국자 전선은 4일 워싱턴D.C.에 약 400명의 단원이 모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자신들을 유럽계 미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는 조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백인 중심의 민족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백인우월주의 성향의 극우 단체다. 2017년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유나이트 더 라이트(Unite the Right)' 집회 이후 등장한 이 단체는 다문화주의와 다양성을 미국 사회를 약화시키는 요소로 규정하며 세력을 확장해 왔다.
이들의 복면과 통일된 복장은 익명성과 결속을 동시에 강화한다. 개인의 책임은 흐리게 만들면서 집단의 존재감과 위압감은 키운다.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일인 2026년 7월4일(현지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뉴캐럴턴의 한 지하철역에서 애국자 전선(Patriot Front) 구성원들이 역사를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이들이 과거 극우 세력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미지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횃불과 폭력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KKK(쿠 클럭스 클랜)나 나치 문양을 앞세웠던 신나치 세력과 달리, 패트리어트 프런트는 미국 국기의 색상과 건국의 상징을 활용해 자신들의 극단주의 이념을 애국주의의 언어로 포장하고 있다. 다만 로고 한가운데에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상징인 파쇼 문양을 결합해 극단주의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미국은 이민과 다양한 인종·민족의 유입을 통해 형성된 대표적인 다인종 국가다. 그러나 그 역사는 다양성의 확대만큼이나 누가 미국인으로 인정받는지를 둘러싼 갈등의 역사이기도 했다. 노예제와 인종 분리의 시대를 거친 미국에서 백인 우월주의는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으며, 시대에 따라 새로운 언어와 형태로 모습을 바꿔 왔다.
일본이 패전 80년을 맞은 2025년 8월15일 도쿄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한 사람들이 욱일기와 일장기를 들고 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현상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역사적 기억을 둘러싼 상징 정치가 극우 세력의 동원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일본의 극우 세력은 욱일기를 정치적 상징으로 사용하며 과거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둘러싼 역사 인식 갈등을 활용해 왔다.
극우 세력이 애국을 앞세우는 이유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강력한 상징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국이라는 말은 본래 공동체를 향한 책임과 애정을 의미하지만, 극우에서는 종종 누가 진짜 국민인가를 가르는 기준으로 이용된다.
자신들은 국가와 전통을 지키는 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이민자나 소수자 등 특정 집단을 국가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배제와 차별의 메시지를 직접 드러내는 대신, '국가를 수호한다'는 언어로 바꾸면서 대중에게 더 쉽게 다가가는 것이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6월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한 참가자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 문제는 이제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다. 일부 극단주의 집회에서는 태극기와 성조기 같은 국가 상징을 활용하고, 반공·멸공 구호나 혐중 정서를 앞세워 외부의 적을 설정하며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처럼 국가 상징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지고, 특정한 역사관과 정치적 목적을 담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토대인 까닭에 이들의 목소리를 강제로 억누를 순 없다. 하지만 혐오와 배제의 메시지가 공공장소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온라인과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마치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주장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주장이 거리와 광장을 점유할 때,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동시에 그 표현이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미국 수도 워싱턴D.C.지하철에서 펼쳐졌던 장면은 우리에게 다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국가를 사랑한다면서 누군가를 밀어내는 순간, 그것은 애국인가 아니면 배제의 언어인가. 이렇게 묻고 답하는 일을 게을리하나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