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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임신 테스트기에서 임신 소견을 확인한 환자가 확진을 위해 산부인과를 내원했다. 진료실로 들어오는 그녀의 표정엔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초음파 결과 자궁 안에 정상적으로 임신낭이 확인되어 일단은 정상 자궁내임신으로 진단할 수 있었다. 대략 임신 5주 정도로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임신을 축하했으나, 산모는 안도하는 기색이 없었다. 

[Dr. 허지만의 진료실 이야기] 임신인 줄 모르고 CT 찍었는데, 방사선 괜찮을까?
임신초기에 엑스레이나 CT촬영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걱정만 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AI 이미지

그녀는 이미 결혼했고, 막연하긴 해도 임신 계획도 있었다. 비록 뜻하지 않게 되었지만, 임신 자체는 매우 환영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무엇을 걱정하는 것일까?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자초지종을 말했다.

일주일 전 그녀는 갑자기 아랫배가 아프고 구역감이 지속되어 병원 응급실에 갔다. 당시 증상이 심했는지 원인 감별을 위해 복부골반 CT 촬영까지 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음을 확인하고 약 처방을 받아 귀가했다고 한다. 

약 복용 후 증상은 다소 호전되었으나, 문득 '혹시 임신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자가 임신 테스트기를 해보니 두 줄이 나와 놀라서 부리나케 산부인과로 달려온 것이다. 

현재 임신 5주 정도라면 일주일 전은 임신 4주가 아닌가! 산모는 약도 약이지만, CT를 찍어 방사선을 쬔 것이 너무 걱정된다고 했다. 적어도 임신 기간 중이 아니었길 바랐는데, 지금으로선 아무리 계산해 봐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초기 임신 때 방사선을 쬐었으니 혹시 임신 중절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울먹이면서 말했다.

본격적인 상담에 앞서 우선 그녀가 좀 진정하고 대화할 준비가 되도록 기다려야 했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과거 응급실에서 인턴 근무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확실히 세월이 흐르니 응급실도 뭔가 변한 모양이다. '왜 가임기 여성에게 임신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아서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환자 본인조차 임신인 줄 몰랐으니, 응급실에서 임신 여부를 물어본들 어쩔 수 없었던 건 맞다. 그러나,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소변 임신 검사가 있다.

필자가 인턴이었던 시절엔 응급실에 내원한 모든 가임기 여성은 반드시 소변 임신 검사를 확인했다. 과잉 검사 아니냐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응급실에서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를 많이 겪다 보면 각종 시시비비에 휘말리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보험 중 하나라는 걸 깨닫는다.

심지어 같은 의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전설처럼 구전되어 내려오는 응급실 일화가 있다. 

병원에서 근무하던 여의사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빨리 검사받길 원하여 응급실 진료를 접수했다. 응급실 인턴은 '늘 하던 대로' 소변 임신 검사를 했고, 여의사는 우연히 본인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미혼이었고 직장에서는 일단 남자 친구가 없다고 말해왔던 모양이었다. 과거 대학병원에선 여의사는 임신마저 직장 상사(교수)의 '허락'을 받고 해야 했던 관행이 있었다. 괜히 처지가 난처해진 그녀는 애꿎은 후배 인턴에게 화를 쏟아냈다고 한다. "네가 뭔데 멋대로 임신 검사를 했냐"라는 것이다. 

아무리 선배 의사이지만 다른 부서에 근무하는 의사를 혼내는 건 지나친 간섭이었기 때문에, 결국 응급의학과 교수가 나서 여의사를 질책하고 상황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교수, 선배 의사, 후배 의사로 내려오는 수직적 위계질서 문화를 보여주는 단면이지만, 병원에서 가임기 여성은 반드시, 그리고 철저하게 임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그럼 이미 복부골반 CT 촬영을 한 임신 5주 산모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검사 목적으로 한 번 촬영한 복부골반 CT 정도의 방사선 노출로는 태아에게 심각한 해를 끼치지 않는다. 따라서 임신 중절의 사유가 되지 않으며, 여느 산모와 동일하게 산전 진찰을 받으면 된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산부인과학회와 방사선 방호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의학적 기준에 따르면, 태아에게 유산이나 기형을 유발할 수 있는 방사선량의 기준점은 50~100 mGy(밀리그레이)이다. 최소 100 mGy 이상의 방사선을 쬐어야 기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엑스레이나 CT 등 진단 검사용 방사선은 이 수치를 넘기기 매우 어렵다. 병원에서 가장 흔하게 촬영하는 흉부 엑스레이의 경우 1회 촬영 시 태아에게 도달하는 방사선량은 0.1 mGy 이하로, 안전 기준치인 100 mGy의 10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산모는 방사선을 차단하는 복부 보호대를 두르고 촬영하기 때문에 더욱 안전하다. 

복부골반 CT의 경우 태아 방사선 노출량은 10~25mGy 내외로 안전한 수준이다. 의사, 간호사, 방사선사 등 직업적으로 방사선에 반복 노출되는 환경에 있지 않은 산모라면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임신 주수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임신인 줄 모르고’ 방사선 등 위험 환경에 노출되었다는 건 ‘다음 생리 예정일 전후’라는 의미이므로 임신 4주 차 정도가 된다. 임신 4주는 ‘전무 아니면 전부(All-or-None) 법칙’이 적용되는 시기이다. 

매우 극초기에 배아가 손상을 입으면 두 가지 결과만 있고 애매한 중간은 없다는 의미이다. 배아가 살아남지 못하고 자연유산 되거나, 손상을 완전히 회복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거나. 이는 우연한 임신에 자연이 제공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인 셈이다.

따라서 산모가 느꼈을 막연한 공포에 비해 의학적인 실제 위험도는 매우 낮다. 산모에게 방사선 노출에 대해선 우선 안심하시라고 달랜 뒤, 앞으로 태아가 정상 발달하는지 잘 확인할 것을 조언했다. “실체가 없는 공포에 잠식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세요.”

글쓴이 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안산병원에서 산모입원 전담 임상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미래아이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따라가며 시기마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자 한다. 아울러 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낀 생각과 도덕적 딜레마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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