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분기 실적 발표 시즌이 되면 기업들은 시장의 관심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기업 성적표의 전부처럼 받아들여지고, 증권 리포트와 분석 기사가 쏟아진다. 주가 차트도 덩달아 기민하게 반응한다.
반면 똑같이 공개된 성적표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발표 시즌마다 존재감 없이 묻혀버리는 지표도 있다. 재무제표만큼이나 많은 정보가 들어 있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말이다. 상반기 말은 보고서 발간이 집중되는 시기지만, 대부분 회사 홈페이지 하단 어딘가에 조용히 게시될 뿐 시장에 별 파문을 일으키지 못한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에 들였을 기업의 노력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다.
기업들이 해마다 발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시장에 별 파문을 일으키지 못한다. ⓒ허프포스트코리아
하지만 막상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기업들이 오히려 시장의 무관심을 방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탄소 배출량, 온실가스 집약도 등의 지표를 빛 좋은 개살구처럼 꾸며뒀지만, 결국 경제적 의미가 결여된 단순 나열에 그치기 때문이다. 탄소 배출을 몇 톤 줄였는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몇 퍼센트 끌어올렸는지는 화려하게 적혀 있으나, 정작 그로 인해 매출이 얼마나 늘고 영업이익률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이 기업의 실제 이익 창출 구조와 맞물려 돌아가지 않다 보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기업의 '착한 경영'을 생색내는 홍보 수단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 담당자조차 "기업이 선의로 하는 일에 트집 잡으면 의욕이 꺾인다"고 토로할 정도다. 환경 경영을 본업이 아닌 '과외 활동'쯤으로 여기는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와중에도 일부 기업(LG유플러스, 네이버, 롯데케미칼 등)의 보고서는 지속가능경영 연구자들 사이에서 재무 지표와의 연계 노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사례로 꼽히지만, 이조차도 일회적 시도에 불과하거나 의도를 드러내는 수준에 그쳐 실질적 지표의 기능을 하지는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특히 아쉬운 것은 대표적 탄소 다배출 업종인 철강 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고서 구성 자체에서 드러난다. 기업 활동이 유발한 환경 비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배출량 수치는 부록에 가까운 위치에 뭉뚱그려 실린다. 그마저도 재무제표와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완벽히 단절된 섹션에서 다뤄진다.
단순히 탄소를 '몇 톤 줄였다'는 선언에 그치는 보고서는 시장에 어떤 경제적 의미도 전달할 수 없다. '돈'이라는 자본시장의 언어로 번역되기 전까지는 어떤 화려한 수치도 시장에서 소화될 수 없는 불완전한 지표일 뿐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최근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제2의 재무제표'처럼 만들어야 한단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재무적 가치와 철저히 분리돼 있으니,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겉돈다. 따라서 환경 지표와 기업의 재무적 이익을 연동시키는 구체적 지표 개발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이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기업이 ESG 부서와 회계 부서가 별도 조직으로 분리돼 있고 조직 내 보고 체계도 다르기 때문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재무 지표와 분리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공시 기준을 연구하는 연구원은 "재무 지표와 환경 지표가 연동된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정보로 취급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업의 조직 운영 자체가 분리돼 있기 때문"이라며 "정보를 연동해서 지표를 의미 있게 만들려면 회계 부서와 ESG 부서가 처음부터 적극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