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최근 단행한 5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사모 전환사채(CB) 발행을 두고, 신사업 투자를 내세운 공식 명분과 달리 실상은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긴급 수혈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건설이 최근 단행한 5천억 원 규모의 대규모 사모 전환사채(CB) 발행을 두고, 신사업 투자를 내세운 공식 명분과 달리 실상은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긴급 수혈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건설
1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현대건설이 발행한 CB를 두고 단순한 미래 투자가 아닌 유동성 경색을 해소하기 위한 재무적 긴급조치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지난 9일 현대건설이 공시한 대규모 CB 발행의 공식 명분은 해상풍력·소형모듈원전(SMR)·대형원전 등 뉴에너지 사업 투자 재원 마련이다. 하지만 이한우 대표 체제 출범 전후로 악화된 현금흐름과 한계에 달한 재무 지표를 고려할 때, 미래 성장 동력 확보라는 포장 이면에 '운전자금 수혈'이라는 다급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러한 재무적 압박의 근원은 2025년 초 단행된 대규모 '빅배스(잠재부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회계기법)'의 후유증에서 출발한다. 현대건설은 자회사 현대엔지니어링의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프로젝트 등 해외 현장 부실을 일괄 반영하며 2024년 결산 기준 1조2634억 원의 연결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이는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에 돌입한 2001년 이후 23년 만의 적자이자 과거 기록한 영업손실 규모(3826억 원)를 3배 뛰어넘는 최대 규모의 손실이었다.
그러나 당시 업계에서는 이 빅배스를 두고 이한우 신임 대표와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의 향후 실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 같은 평가는 현대건설이 2025년 영업이익 가이던스를 사상 최대치인 1조1828억 원으로 설정한 것과도 궤를 같이 한다. 통상 빅배스 이후 일어나는 실적 반등 효과를 당시 컨센서스보다 5천억 원 높여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2025년 현대건설의 영업이익은 6530억 원으로 자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장부상의 부실을 한 번에 털어내는 과정에서 이익잉여금이 증발했고, 자본총계가 깎이는 재무적 타격을 남겼다. 그 결과 부채비율은 2023년 126.8% 수준에서 179.3% 수준까지 치솟았고, 공사손실충당금마저 한계치까지 끌어다 쓰면서 향후 실적 방어를 위한 회계적 완충 장치는 사실상 모두 소진됐다.
문제는 장부상 잠재 손실을 도려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제에서의 돈맥경화는 오히려 심화됐다는 점이다. 2025년 말 기준 현대건설의 공사미수금은 6조8035억 원으로 2024년(약 5조 232억 원) 대비 35%가량 급증하며 빅4 건설사 중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장부상의 위험 요소만 지워냈을 뿐 실제 현장 공사대금이 회수되지 않으면서 기업의 근본적인 현금창출력은 저하된 상태다. 건설 빅4 중 유일하게 2025년에도 7482억 원 규모로 마이너스 영업활동현금흐름을 기록한 것도 이 영향이다. 빅배스로 회계상 리스크는 덮었지만 정작 현장을 굴려야 할 실탄(운전자금)이 말라버리는 구조적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결국 현대건설의 대규모 CB 발행은 이처럼 회계적 카드가 고갈되고 현금 흐름이 굳어버린 상황에서 꺼내든 고육지책으로 평가된다. 0% 이자의 CB 발행은 이자 부담 없이 당장의 심각한 유동성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전환권이 행사되면 부채가 자본으로 바뀌어 빅배스로 훼손된 자본과 부채비율을 단숨에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도 현대건설의 현 상황에 대해 본업의 수익성 회복이 시급하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놓고 있다.
허재준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건설은 국내 건설사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작용하는 해외 사업부 대규모 손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최근까지도 현대건설은 해외 플랜트에서 적자를 기록했고 주택건축 이익기여도가 60%를 넘는 상황에서 여전히 국내 주택 사업 불확실성도 잔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건설의 현재 주가를 적정 수준으로 평가하려면 주택 및 플랜트 사업부문의 수익성 회복 및 안정화, 원전 사업에서의 수익성 검증, 뉴에너지 사업부문의 실제 수주 확보 등이 포착돼야 한다"고 내다봤다.
현대건설은 CB 발행과 운전자금 확보의 연관성에는 선을 그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CB 발행 목적은 에너지 사업에 전략적 투자를 확대하고 신용등급 상향을 통해 금융조달 경쟁력을 강화하고 대규모 수주를 확보하려는 것"이라며 "재무지표는 개선되는 추세에 있으므로 운전자금 마련이라는 목적은 성립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