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이사 사장이 글로벌 사업의 새 수장으로 현대자동차그룹 출신의 글로벌 인수합병(M&A) 전문가를 영입했다. 지분 투자와 기술 수출 중심이던 해외 진출 전략에 '인수합병'이라는 무기를 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주인공은 김우주 전 기아 글로벌사업관리본부 전무를 글로벌본부장이다. 약 30년 동안 현대차그룹에서 글로벌·미래 사업 실무를 담당했으며, 특히 현대차그룹의 미국 투자지주사 'HMG 글로벌' 설립과 로봇제조사 '보스턴 다이내믹스' M&A를 담당하며 북미 시장 투자와 사업 확장을 주도한 인물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카카오뱅크가 영입 배경으로 내세운 키워드가 'M&A'와 '투자'였다는 점이다.
그동안 카카오뱅크의 해외 진출은 현지 파트너에 지분을 투자하고 모바일뱅킹 기술과 노하우를 이식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인도네시아, 태국, 몽골 등이 대표적 사례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김우주 카카오뱅크 글로벌부문장. ⓒ카카오뱅크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사장이 자본을 투입해 해외 법인을 인수하거나 세우는 일에 특화된 인물을 글로벌 사업의 수장으로 앉힌 것은, 기존의 글로벌 전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M&A'역량을 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 '스마트 마이너리티'에서 '리딩 메이저리티'로, 김우주 영입으로 3단계 로드맵의 다음 칸 준비
다만 김 본부장의 영입을 카카오뱅크의 글로벌 전략 노선이 전환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M&A는 카카오뱅크가 처음부터 그려둔 글로벌 로드맵의 '다음 단계'에 이미 명시돼 있던 수단이기 때문이다.
카카오뱅크는 해외 진출 전략을 세 단계로 설계해두고 있다. 1단계인 '스마트 마이너리티'는 낮은 리스크로 지분 투자를 통해 현지 시장을 학습하는 단계이며, 2단계 '컨소시엄 파트너십'은 해외 유수 파트너와 컨소시엄·합작법인(JV)을 꾸려 신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단계다.
마지막 3단계 '리딩 메이저리티'는 축적된 경험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재무적 이익을 실현하는 단계다.
주목할 점은 카카오뱅크가 스스로 현재 위치를 2단계인 컨소시엄 파트너십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카카오뱅크가 제시한, 그러나 아직 도달하지 않은 3단계의 구체적 추진 내용이 바로 'M&A(경영권 인수)'와 '신규 라이선스 취득'이다. 글로벌 M&A 경험을 갖춘 김 본부장의 영입을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유다.
카카오뱅크는 김 본부장을 영입하면서 사업 모델의 고도화에 필요한 전문성도 갖추게 됐다. 카카오뱅크가 글로벌 진출의 3단계로 넘어가면서 단순 지분 투자를 넘어 공격적 자본 투입과 매물 탐색, 그리고 해당 매물의 경영권 확보 등을 다룰 수 있는 글로벌 자본 시장의 전문성이 필요해 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인도네시아·태국·몽골, 스마트 마이너리티와 컨소시엄 파트너십의 발자취
카카오뱅크에 따르면 카카오뱅크가 지금까지 쌓아온 글로벌 성과는 로드맵의 1·2단계에 해당한다.
카카오뱅크는 2023년 9월, 동남아 최대 슈퍼앱 그랩(Grab)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디지털은행 '슈퍼뱅크'에 지분을 투자했다. 1단계인 스마트 마이너리티 전략에 따른 것이다. 카카오뱅크는 단순 투자에 그치지 않고 그랩과 상품·서비스 기획과 UI/UX 자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했고, 슈퍼뱅크는 출범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고객 수도 500만 명을 돌파했다. 슈퍼뱅크는 지난해 말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IDX)에 상장했다.
태국에서 카카오뱅크가 보여준 모습은 2단계인 컨소시엄 파트너십에 가깝다. 카카오뱅크는 태국 현지 금융지주사 SCBX, 중국의 인터넷전문은행 위뱅크와 업무협약을 맺고 컨소시엄을 구성해 2025년 6월 태국에서 가상은행 인가를 획득했다. 이들이 협력해서 만드는 태국 첫 가상은행인 '뱅크X'는 현재 출범 준비 단계에 있다.
가장 최근 카카오뱅크가 보여준 글로벌 행보는 몽골 진출이다. 카카오뱅크는 2026년 4월 몽골 최대 기업인 MCS그룹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몽골 금융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전략적 지분투자와 서비스 자문은 물론, 신용평가모형 고도화와 대안신용평가모형 공동 개발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역시 1, 2단계에 해당하는 모델이다.
◆ 성장판 닫힌 국내, '글로벌'은 선택 아닌 필수
윤 사장이 글로벌 사업에 힘을 싣고 전문 경영진까지 보강하는 배경에는 국내 시장의 구조적 성장 정체가 자리한다.
카카오뱅크의 연간 여신 잔액 성장률은 2023년 38.7%에서 2024년 11.6%, 2025년 8.6%로 가파르게 꺾였다. 영업수익 성장률 역시 2022년 50%대에서 2025년 4.8%까지 떨어졌다. 인터넷전문은행법상 법인에 대한 신용공여(대기업 대출)가 원칙적으로 막혀 있는 데다, 여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계대출마저 규제로 묶이면서 국내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윤 사장이 카카오뱅크를 2027년까지 자산 100조 원의 종합금융플랫폼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목표를 내건 만큼, 해외 시장 개척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업으로 꼽히고 있다.
◆ 자본력과 지속가능한 글로벌 사업모델 구축, 3단계로 가는 길의 과제
다만 로드맵의 마지막 단계인 'M&A·경영권 인수'로 나아가는 길에는 검증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자본력이다. 카카오뱅크가 시도하는 3단계는 사실 시중은행들은 이미 글로벌 진출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업 모델이다. 시중은행에 비해 자본 규모에서 열세인 카카오뱅크가 경영권 인수형 딜을 감당할 실탄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비용과 리스크를 줄여온 '기술 수출' 모델의 강점과, 자본 투입을 늘리는 새 단계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역시 윤 사장과 김 본부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수익의 질도 입증해야 한다. 지금까지 카카오뱅크의 글로벌 진출에서 ‘재무적 성과’라고 할만한 것은 슈퍼뱅크 상장에 따른 일회성 이익이 전부다. 올해 1분기 카카오뱅크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이끈 핵심 요인은 슈퍼뱅크 지분투자에서 발생한 평가이익 933억 원이었다.
카카오뱅크가 단순히 투자이익을 거두기 위해 글로벌 진출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윤 사장이 구상하고 김 본부장이 이끄는 새 체제가 카카오뱅크의 글로벌 진출을 단순히 일회성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카카오뱅크의 사업을 글로벌이라는 새 무대로 ‘퀀텀점프’ 시켜줄 수 있을지가 두 사람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카카오뱅크는 점진적이고 체계적인 글로벌 전략을 통해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라며 “김 본부장은 현대차그룹에서 글로벌 M&A와 투자 사업 확장을 주도하며 전문성을 쌓아온 전문가로 카카오뱅크에서도 해외 진출 전략을 안정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