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든 다큐멘터리 감독은 폭도가 아니었다. 서부지법 폭동 현장을 촬영한 일이 왜 범죄가 되었을까.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2025년1월19일 오전 서부지법 외벽과 창문 등 시설물이 파손돼 있다(왼쪽).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 ⓒ연합뉴스
서부지법 폭동 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법원에 들어갔다가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이 헌법재판소에 재판소원을 청구했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재판으로 인해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될 때, 헌법재판소에 그 재판의 위헌 여부를 다시 판단해달라고 청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정 감독은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년간 증거를 조작했던 경찰과 객관의무를 저버린 검찰, 그리고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았던 법관들의 양심을 지켜보며 예술가로서 정체성에 큰 혼란이 있었음을 담담히 고백한다"며 "대법원 스스로 헌법정신을 지키지 않고 예술가의 양심에 유죄라는 기록을 남겼으니 이를 근거로 마지막 절차인 재판소원을 신청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한 2025년 1월19일 오전 서부지법 창과 외벽 등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정 감독은 2025년 1월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한 폭동 사태 당시 시위대에 의해 법원이 침탈당하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법원 후문으로 진입했다가 경찰의 시위대 체포 과정에서 함께 연행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영장 발부에 반발한 시위대가 2025년 1월19일 서울서부지방 법원 경내에 난입해 건물 일부를 파손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시위대는 법원 내부까지 진입해 집기와 시설물을 훼손했고, 현장에서는 다수의 체포와 연행이 이어졌다.
대법원은 4월30일 정 감독의 건조물침입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정 감독은 20여 년 동안 2008년 촛불집회,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등 한국 사회의 주요 역사적 현장을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당시 정 감독이 서부지법 사태를 촬영한 영상 역시 여러 언론기관에 제공된 바 있다.
"서부지법 촬영은 직업적 활동,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
2025년 1월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직후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태 현장에서 촬영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받은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이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정윤석 감독을 포함해 서울서부지법 1·19 난동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18명에 대해 전원 유죄를 선고했다. ⓒ연합뉴스
정 감독은 "서부지법 촬영은 당연한 의무이자 직업적 활동이었다"며 "예술가에게 표현의 자유는 진실을 말할 용기이자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또 "만약 본 사건이 헌재에서 각하된다면 그 판단과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국회와 문체부, 그리고 정부의 수장이신 이재명 대통령님께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전면적인 개정과 문화예술인들의 실제적인 처우 개선을 위해 힘써주시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기록하는 사람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지난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저도 국회에 있었다"며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료 영화인들이,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로 달려 간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 현장을 기록하여 진실을 남기기 위해서였고, 폭력적이고 위법적인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지켜보고 기록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카메라는 폭력을 억제하는 방패가 된다"며 " 정 감독이 사상 초유의 법원 폭동 사태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이유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이사장은 대법원을 향해 "창작자의 소명 의식을 ‘범죄’로 낙인찍었다"며 특히 사법부가 독립영화인과 언론인을 다르게 취급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독립영화인들을 가장 뼈저리게 하는 것은 사법부가 노골적으로 그어놓은 '차별의 선'"이라며 "소속 없는 독립영화인이 낸 용기는 처벌받아야 할 무단 침입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기관은 폭동범을 잡겠다며 정윤석 감독의 영상을 샅샅이 가져다 증거로 썼다"며 "사용할 때는 공익이고, 판결할 때는 불법이라는 이 참담한 이중 잣대 앞에서 우리 창작자들은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 감독이 재판 과정에서 겪은 고통에 대한 호소도 이어졌다.
백 이사장은 "기록자와 파괴자를 한 법정에서 묶어 재판을 강행했고, 그 결과 신상이 극우 세력에게 유출되어 끔찍한 테러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고 밝혔다.
이어 "판결 소식을 들은 수많은 동료들이 절망 속에 묻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해?'"라며 "누군가가 허락한 안전하고 예쁜 그림만 찍는 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의도와 상관없이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된다면, 누가 용기를 낼 수 있겠느냐? 이 판결은 모든 독립영화인, 창작자들의 숨통을 조이는 사형 선고다. 기계적인 잣대와 싸워야 하고, 테러와 전과자가 될 각오를 해야만 진실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고 토로했다.
정윤석 감독 대리인단인 강송욱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여러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보호받아야 할 예술의 자유 등 기본권 행사와 책임을 물어야할 범죄행위를 구분하는 것은 헌법에 따라 요구되는 법원의 기본적 역할"이라며 "언론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청구인을 처벌하는 결과에 이른 이 사건 재판들은 청구인 뿐만 아니라 저널리즘 실현에 기여하는 모든 이들이 향유하는 예술의 자유 등 기본권의 보호 범위를 축소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이 사건 청구를 통해 현장에서 각종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예술인 등 저널리스트의 활동에 대한 헌법적 보호와 보장을 확인받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서채완 공익인권변론센터 부소장은 이번 재판소원 청구가 대법원 판결이 헌법과 기존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까지 정면으로 거스른 데 대한 문제 제기라고 설명했다.
서 부소장은 정윤석 감독 측이 항소심에서 체포의 위법성을 주장했음에도 법원이 이를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고, 대법원 역시 항소심이 직권으로 다루지 않았으니 문제없다는 식으로 판단한 것은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는 적법절차를 외면한 재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폭도들과 변론을 분리하지 않은 것은 재판부의 소송지휘권 남용에 해당하며, 예술의 자유와 권리 보장을 선언한 헌법 제22조와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서 부소장은 국제인권규범인 자유권규약 제19조와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까지 침해했고, 과잉금지원칙과 평등권 역시 훼손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헌법재판소가 직접 판단해야 할 재판소원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