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8일부터 지방선거 투표 당일까지 대한민국 유권자의 눈과 귀는 반쯤 가려진다. 후보자 지지율이나 판세를 보여주는 여론조사 결과의 보도 및 공표가 전면 금지되는 이른바 '블랙아웃(깜깜이)' 기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 시민이 2024년 총선에서 사전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철마다 돌아오는 정례 행사 같다지만 당장 29일부터 시작되는 사전투표장에 들어서기 전 마음 한구석에는 떠오르는 질문이 쉽게 덮히지 않는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가 정말 꼭 필요한 걸까? 그리고 6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표가 금지돼야 할까?
선거 직전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108조 조항은 1994년 선거법 제정과 함께 탄생했다. 도입 초기에는 금지 기간이 7일이었으나 금지 기간이 너무 길어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에 밀려 2005년 단 하루를 줄인 것이 지금의 ‘6일’이다.
법률 제정 당시 시대적 맥락을 보면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규제 명분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여론조사 기관에 대한 체계적 심의나 검증 시스템이 미비했고 선거 직전 편향되거나 부실하게 설계된 여론조사 결과가 무분별하게 발표될 경우 상대 후보 측에서 이를 반박하거나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선거 결과에 치명적인 왜곡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표 금지 기간이 6일로 법이 개정된 지도 20년 넘게 지난 지금 우리 유권자들이 과연 숫자에 쉽게 휘둘리는 수동적 존재인지부터가 의문이다. 무엇보다 미디어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제도권 언론의 입을 막아놓는다고 해서 정보가 차단되는 시대가 아니다.
공식 보도가 멈춘 감시의 공백을 피해 카카오톡의 단톡방이나 유튜브, 텔레그램 등 음지에서는 출처 불명의 '가짜 여론조사'와 '지라시'가 홍수를 이룬다. 투명하게 검증된 정보는 법으로 묶어두고 검증되지 않은 은밀한 정보가 유권자의 눈을 더 오염시키는 지독한 규제의 역설이다.
게다가 이 법은 평범한 유권자에게만 가혹하다. 정당 내부자들은 이 기간에도 '미공표 여론조사'를 돌려 실시간으로 판세를 다 들여다본다. 돈과 권력이 있는 이들은 정교한 나침반을 들고 막판 전략을 짜는데 정작 투표의 진짜 주인인 일반 유권자 눈만 가려진 채 투표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철저한 ‘정보의 양극화’를 유발시키는 셈이다.
여의도만 지지율을 알고, 선거의 주체인 유권자는 깜깜이 속에서 찍어야 하는 기묘한 풍경이 펼쳐지는 셈이다.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괴리도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이 주는 부작용이다. 전체 투표율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사전투표의 비중이 커졌는데 사전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은 최종 판세의 흐름은 물론이고 막판에 터진 대형 변수가 민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조차 못한 채 표를 던져야 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온갖 가짜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현실 속에서 언론 보도만 막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가 과연 무슨 실효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조차 2023년 1월 선거 여론조사 공표·보도 금지 기간 조항을 폐지하자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여야 정치권은 움직이지 않았다.
현행 제도의 문제점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국회가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주요 정당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이란 의구심도 제기된다.
깜깜이 기간에는 미디어를 통한 여론 확산이 차단되기 때문에 결국 기존의 튼튼한 지역 조직과 당원 동원력을 가진 거대 정당의 현역 의원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이를테면 '판세 변화 가능성을 막음으로써' 기득권을 안정적으로 지키려는 셈법이 작동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 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 공표를 제한하지 않는 이유도 유권자의 판단력을 믿기 때문이다. 진짜 공정한 선거는 정보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펼쳐놓고 유권자의 집단지성이 가짜를 걸러내도록 믿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