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류업계가 소주 소비의 오래된 공식을 깨기 시작했다. 걸그룹 대신 개그우먼 이수지를 광고모델로 세우고, 피자와 치킨에 소주를 곁들이는 ‘피쏘·치쏘’ 조합을 소개한다. 침체된 시장 환경에서 소주의 소비문화 자체를 바꾸려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이수지를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의 광고 모델로 발탁하고, 과거 대표 소주 광고 콘셉트를 패러디한 버전을 선보였다. ⓒ롯데칠성음료 공식 유튜브 갈무리
롯데칠성음료와 하이트진로는 최근 소주 광고에서 기존의 ‘청순하고 세련된 여성 스타’ 중심 문법 대신 콘텐츠 화제성과 친근함, 음식 페어링 실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단순히 광고 모델만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소주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를 재정의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롯데칠성음료는 ‘처음처럼’ 신규 광고 모델로 이수지를 발탁했다. 과거 소주 광고가 대체로 인기 걸그룹 멤버나 배우를 중심으로 전개됐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모델 교체가 아니라 소비 세대 변화에 맞춘 전략 수정으로 보고 있다.
최근 젊은 소비층은 ‘완벽하게 꾸며진 스타 이미지’보다 밈과 숏폼 콘텐츠, 생활형 유머 코드에 더 빠르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수지는 다양한 캐릭터 패러디와 현실 공감형 개그로 온라인 화제성을 확보해온 인물인 만큼, 브랜드 역시 친근하고 부담 없는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소주 광고의 핵심 코드가 ‘동경’에서 ‘공감’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처음처럼의 대표 광고 패러디를 통해 신선한 웃음을 선사하고 추억을 환기하고자 했다”며 “다양한 부캐를 만들어 재미와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개그우먼 이수지 씨만큼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하이트진로의 접근도 눈에 띈다. 하이트진로는 넷플릭스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최강록 셰프와 함께 ‘세상의 모든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진로’ 캠페인을 진행하며 기존 소주 소비 공식을 흔들고 있다.
핵심은 음식 조합의 확장이다. 광고에서는 삼겹살·찌개 같은 전통 한식 중심에서 벗어나 파스타와 소주를 결합한 ‘파쏘’, 치킨과 소주를 조합한 ‘치쏘’ 등을 제시하며 “소주는 한식과만 어울린다”는 고정관념 허물기에 나섰다. 젊은 소비층에게 소주를 보다 캐주얼하고 글로벌한 술 문화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러한 변화 배경에는 국내 소주 시장의 성장 정체가 자리하고 있다. 혼술·홈술 문화 확산 이후 소비자 취향이 다양해졌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하이볼·와인·수입맥주 등 선택지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전통적 소주 소비 방식만으로는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커진 것이다.
결국 최근 주류업계의 전략 변화는 새로운 음용 문화와 이미지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소주 광고가 스타성과 깨끗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소비를 자극했다면, 이제는 콘텐츠 화제성과 밈, 음식 페어링 경험 확장 등을 통해 소주를 보다 일상적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이번 광고는 상상치 못한 다양한 안주 조합들을 제안하며 진로만의 매력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며 ”평소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매력으로 사랑받아온 최강록 셰프와의 시너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