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백악관의 불이 하나둘 꺼질 때도 79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손가락은 쉬지 않았다.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계정은 마치 심야 라이브 방송처럼 쉼 없이 돌아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밤에 SNS를 하고 있는 모습. AI 생성 이미지.
12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오후 10시14분부터 다음 날 오전 1시12분까지 트루스소셜에 총 55개의 게시물을 쏟아냈다. 여기엔 음모론, 조롱, 인공지능(AI) 생성 이미지까지 한꺼번에 뒤섞였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2016년 대선 당시 자신을 끌어내리기 위해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을 꾸몄다는 취지의 게시물을 공유했다. 심지어 "반역자 오바마를 체포하라"는 과격한 문구까지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피해자 정치 프레임이 또다시 등장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각) "민주당원들은 오물을 사랑한다"는 문구와 함께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워싱턴 기념탑 앞 오물에 빠진 모습을 담은 AI 생성 이미지를 공유했다. ⓒ트루스소셜
수위는 더 높아졌다. 트럼프는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워싱턴 기념탑 앞 오물에 빠진 모습을 담은 AI 생성 이미지를 게시한 뒤 "민주당원들은 오물을 사랑한다"고 적었다. 정치적 공격은 이제 밈(meme)과 AI 이미지의 형태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트럼프가 트루스소셜을 음모론 확산과 정적 공격의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트럼프의 심야 SNS 업로드는 새로운 풍경도 아니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도 몇 시간 동안 160건이 넘는 게시물을 올렸다.
논란이 오히려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트럼프는 지난달 5일 부활절에 뜬금없이 "알라를 찬양하라"는 글을 올렸다. 지난달 13일에는 "나는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교황도 원하지 않는다"고 교황 레오14세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자신을 예수에 빗댄 AI 이미지까지 공유하며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트루스 소셜에 자신을 예수로 빗댄 이미지를 올렸다. ⓒ트루스소셜
백악관 브리핑보다 그의 SNS 게시물이 먼저 세상을 흔드는 일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는 지난달 7일 이란을 향해 “오늘 밤 하나의 문명이 통째로 사라질 것”이라는 글을 올려 국제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트럼프에게 SNS는 단순한 소통 창구가 아니다. 정치와 외교, 심지어 전쟁 이슈까지 실시간으로 증폭시키는 개인 확성기에 가깝다. 그가 SNS에 던진 짧은 문장 하나는 곧바로 속보가 되고, 전 세계 뉴스 헤드라인으로 번진다. 트루스소셜은 트럼프에게 사실상 개인 방송국에 가깝다. 언론의 편집이나 검증 없이 자신의 메시지를 지지층에 곧바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SNS 집착은 기존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거나 비판적인 언론을 반복해서 "가짜 뉴스"라고 공격해왔다. 2018년 CNN 기자의 질문에 공개적으로 "당신은 무례하고 끔찍한 사람"이라고 쏘아붙였고, CNN을 "국민의 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를 두고도 "망해가는 뉴욕타임스"라고 여러 차례 조롱했다. 특히 영향력이 큰 대통령이 특정 언론을 지속적으로 낙인찍을 경우, 사회 전반의 언론 불신이 커지고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언론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 말이 곧 진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트럼프의 SNS 정치는 '탈진실(post-truth) 정치'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트럼프는 사실 검증(팩트체크)보다 감정과 자극이 더 큰 영향력을 갖는 SNS 환경 속에서 논란과 분열마저 정치적 영향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실제로 여론은 크게 갈리고 있다.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지난 4월 20일부터 26일까지 미국 성인 51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4%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공화당 지지층 내부에서는 68%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전체 국민의 피로감과 별개로 핵심 지지층의 충성도는 아직 굳건한 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플랫폼의 이름은 '트루스(Truth)소셜'이다. 마치 '내 말이 곧 진실'이라는 듯, 트루스소셜은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감정과 분노를 끊임없이 증폭시키는 메아리 공간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