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뾰족한 해답이 안 보일 때가 있다. 구조를 바꾼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구조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라 손도 못 대는 경우가 있다.
시장이 무너졌거나 소비자의 행동이 급변했거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위에 서 있을 때는 더 막막하다. 뭔가 바꾸고 싶은데, 도무지 손 댈 데가 없다. 원래는 큰 바위 하나 치우면 물길이 바뀌는데, 도무지 그 큰 바위가 안 보인다. 없거나, 있더라도 지금은 안 보인다.
사업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뾰족한 해답이 안 보일 때가 있다. 구조를 바꾼다고 해결될 것 같지도 않을 뿐더러 구조 자체가 문제의 본질이라 손도 못 대는 경우가 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미술품 경매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가 딱 그랬다. 시장은 바닥이었고, 작품은 안 팔렸다. 왜 안 팔리는지도 몰랐다. 강한 공급자 시장에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고,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미술품 시장은 역사가 짧고 폐쇄적이라 참고할 사례도 없었고, 경쟁사도 똑같이 헤매고 있었다. 나 역시 문외한이었고, 조직은 임금 삭감으로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어쩌겠어,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닌데'라는 체념이 지배적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했다. 직원들을 한 명씩 만나 얘기를 듣고, 집단지성을 모았다. 목표와 전략을 같이 세우고, 가격대를 낮춰 온라인 경매를 시도하고, 조직을 슬림화하고 흩어진 정보를 모아 시스템을 만들고, 고객을 다시 들여다보고, 새로운 고객을 찾으려고 했다. 물길을 바꿀 '큰 바위'는 끝내 못 찾았지만, 대신 작은 바위들을 하나씩 치웠다. 내부 체력이 조금씩 붙기 시작했다.
IT 모빌리티 사업도 비슷했다. 사용자와 매출은 늘어나는데 수익은 개선되지 않았다. 예상 못한 문제들이 계속 터졌고 스타트업답게 대응은 빨랐지만, 사업 구조 자체가 본질적 한계였다. 큰 틀을 뒤엎을 수는 없고, 결국 부수적인 구조를 계속 건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제일 지루한 작업이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러다 보면 조직 안에서 "이런다고 되겠어?"라는 비관적 시각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도 해야 한다. 변화해야 사는데, 구조적인 큰 변화를 시도하지 못 하는 상황이라도 뭐든 생각해 내고 매일 실천해야 그 변화라는 것이 온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전략'을 찾는다. 뭔가 한 방에 뒤집을 멋진 비밀무기 같은 걸 기대한다. 하지만 내게 전략은 무언가를 새로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었다. 안 해도 될 일을 걷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전략을 3~4개로 줄였다. 5개가 넘어가면 조직원들이 기억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전략은 대부분 상식적인 선에서 정해진다. 다만 그 상식적인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게 어려울 뿐이다. 가는 길이 험해 보여서, 기득권이 흔들릴까 봐, 혹은 과거 실패 경험이 떠올라 주저하는 것뿐이다.
화장품 기업에서는 팬데믹이 큰 변수였다. 온라인이 뜨고 오프라인이 질 것이란 건 다들 알았다. 하지만 그 당시엔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얼마나 심각할지, 예측이 어려웠다. 그러니 오프라인 중심 구조를 포기하는 건 간단치 않았다. 수많은 매장을 접고 손실을 감수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분명했다. 매출은 떨어지고, 수익은 적자다. 결국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답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했다.
제약회사에서도 비슷했다. 오래된 영업조직은 느슨했고 둔감했고, 자극에도 심드렁했고 오랜 시간동안 성과와 무관하게 충성심으로 자리를 지켜온 '훈훈한' 사람들이 많았다. '못해도 이 정도, 잘해도 이 정도…' 그냥 목표만 딱 맞추는 상태. 이를 다들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6개월간 필요한 작업을 했다.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고, 숨은 인재에게 기회를 줬다. 조직은 움직이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특별한 전략이랄 건 없었다. 다들 알고 있던 걸 실행했을 뿐이다.
결국 전략이란 별 게 아니다. 상식적인 선택 몇 개를 남기고 나머지를 걷어내는 일, 그리고 그걸 실제로 하는 것이다.
살면서도 마찬가지다. 내 인생이 별로라고 느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제와 똑같은 내일이 반복된다. 다른 삶을 살길 원하면서,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무엇을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할 엄두가 안 나거나, '그런 작은 일 해서 일이 되겠어?' 라고 생각하거나, 무엇보다도 인생역전 할 정답이 딱히 없다고 생각해서 어제와 똑같이 살면 똑같은 내일을 맞이할 뿐이다.
그래서 난 그냥 한다. 방구석에 앉아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결국 엉덩이를 들고 그냥 한다. 하기 싫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 그게 제일 어렵다. 근력 운동처럼….
글쓴이 조정열 전 에이블씨엔씨 대표이사는 K옥션, 갤러리현대, 쏘카, 한독, 에이블씨엔씨에 이르기까지 10년 넘게 예술, IT 플랫폼, 제약, 소비재 산업을 넘나들며 전문 경영인으로 일했다. 1991년 동서리서치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마케팅 사관학교' 유니레버와 로레알 한국 지사에서 마케팅과 브랜딩을 담당하며 10년을 보냈다. 이후 MSD 한국 지사 사업부 담당, 피자헛 한국 지사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며 대표가 되기 전 10년간 임원 생활을 했다. 현재는 후배 경영인과 직장인의 멘토로, 예술계와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아트 프로모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전략보다 '지금, 여기'였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