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 소비자는 장을 볼 때마다 계산이 복잡해진다. “얼마를 쓰느냐”에 “어떤 방식으로 써야 지출이 새지 않을까”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일상이 됐다.
지출의 구멍을 막기 위한 매대 앞의 전략적 판단이 강화되는 가운데, 소비 자체가 ‘한입소비’와 ‘벌크소비’라는 겉보기엔 정반대인 두 흐름으로 나뉘고 있다.
한쪽은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 소용량 구매를 선택하고, 다른 한쪽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량 구매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이 스타벅스의 조각 케이크를 먹고 있는 모습. ⓒ스타벅스코리아
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입 크기로 소포장한 상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관련 상품 군이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다. 유통업계 전반에서 소비 단위를 1인·한 끼·한 입 기준으로 재설계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CU는 지난 4월 김밥의 지름을 1cm 줄여 한 입에 먹기 쉽게 설계한 ‘PBICK 한입 쏙 스팸 계란김밥’을 선보였다. 기존 김밥보다 약 3조각 정도 용량을 줄인 ‘PBICK 참치샐러드 5조각 김밥’도 함께 출시했으며, 한 컵 단위로 소용량 포장한 ‘컵 닭강정’까지 내놓으며 한 끼 식사를 더욱 잘게 나눈 ‘소단위 간편식’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GS25 역시 지난 2월 한 끼용 소포장 농산물 ‘한끼 딱’ 시리즈 14종을 출시한 데 이어, 최근에는 4천 원대 가격으로 200g 단위로 소분한 ‘한 끼 양념육’ 3종을 선보이며 1인 가구와 간편 소비 수요를 겨냥한 가성비·조리 편의성 중심의 상품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디저트 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최근 조각 케이크 라인업을 확대하며 소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이달 ‘라프레플루트 자몽 망고 코코넛 케이크’, ‘딸기 생크림 초코 케이크’, ‘초콜릿 크런치 케이크’ 등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며 다양한 맛을 소량 단위로 나눠 즐기는 선택형 소비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최현정 스타벅스 식음개발담당자는 “최근 다양한 맛을 비교하며 즐기는 경험 중심 소비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스타벅스도 이에 발맞춰 조각 케이크 라인업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제시한 ‘올해 7대 식품소비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간단함’이 식사 메뉴의 핵심 가치로 부상하면서 컵냉면, 컵빙수 등 이른바 ‘컵푸드’가 일상적 식사 형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소비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롯데마트의 경우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수박을 소분해 판매하는 ‘커팅 수박’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1.3% 증가했고, 조각 과일 전체 매출도 같은 기간 63.4% 늘었다. 이마트 역시 조각 과일 매출이 2022년과 비교해 40% 이상 증가했다.
가공식품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이마트가 2cm 단위로 깍둑썰기해 판매하는 ‘네모 삼겹살’은 손질 없이 바로 조리할 수 있는 상품으로, 출시 두 달 만에 85톤 이상 판매되며 빠르게 시장에 안착했다. 식품의 소비 단위가 즉시 즉시 조리·소비가 가능한 수준으로 점차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소용량 전략의 핵심은 단순한 양 축소가 아니라, 보관 부담을 줄이고 즉시 소비 가능성을 높이며 음식 폐기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결과적으로 소비 구조 자체가 ‘개봉 즉시 소비 가능한 형태’로 재설계되고 있는 셈이다.
반대편에서는 정반대의 흐름도 동시에 강화되고 있다. 물가 상승 부담 속에서 소비자들은 단가를 낮추기 위해 대용량·묶음 구매를 선택하고 있으며, 창고형 할인점과 대형마트의 벌크 상품이 그 중심에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창고형 할인점은 2016~2021년 동안 연평균 약 10% 수준의 성장세를 유지한 데 이어, 2024년 이후 다시 성장세가 강화된고 있다. 대표적으로 트레이더스는 대용량 식품과 묶음 상품을 기반으로 성장하며 배송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트레이더스는 지난해 매출 3조8520억 원, 영업이익 1293억 원을 기록하며 2024년보다 각각 8.5%, 39.9% 증가했다. 올해 1분기 매출도 지난해 1분기보다 9.7%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송 매출 역시 지난해보다 38%가량 증가하며 온라인 기반 대용량 소비 확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벌크 소비는 단순한 ‘대량 구매’가 아니라, 단위당 가격을 낮춰 전체 식비 부담을 줄이는 구조적 절약 전략으로 해석된다. 즉 소용량 소비가 ‘낭비 최소화 전략’이라면, 벌크 소비는 ‘단가 절감 전략’으로 기능하며, 두 흐름은 고물가 환경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소비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