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을 향해 무역관세와 미군철수라는 두 가지 압박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란전쟁에 협조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흔드는 '투트랙 압박'에 유럽연합(EU)은 대응 방안을 두고 숙고를 거듭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5월1일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있는 레이먼드 F. 크래비스 공연예술 센터에서 연설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 AP통신=연합뉴스
4일 미국 매체 NPR과 스타스앤스트라입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미국은 이란전쟁 이후 유럽 각국을 압박한 데 이어 유럽연합을 향해 지난해 써먹었던 관세 압박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유럽은 미국의 투트랙 압박에 대응책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유럽연합, 트럼프의 무역관세 압박에 경제적 반격카드 쓰기 어려운 이유
베른트 랑에 유럽의회 무역위원장 ⓒ 베른트 랑에 인스타그램 갈무리
트럼프 대통령은 5월1일 유럽연합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기존 15%에서 25%로 올리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글로벌 안보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관세 인상발표가 이란전쟁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간 외교갈등과 맞물려 있다고 본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해 유럽국가들에게 군함 파견 등을 요구했지만 주요 유럽 국가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라는 경제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표면적 명분으로 '유럽연합이 무역합의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지만 속내는 '유럽 길들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합의는 2025년 7월 맺어진 이른바 '턴베리 합의'을 일컫는다. 미국은 관세를 낮추고 유럽연합은 미국산 제품의 유럽 시장 접근을 확대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즉각 반발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유럽연합은 통상적 입법절차에 따라 합의 내용을 이행하고 있다"며 "우리는 여전히 예측가능하고 상호 호혜적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뒤통수를 맞은 유럽연합은 무역분야에서 반격 카드를 꺼내들지 검토하고 있다.
베른트 랑에 유럽연합 의회 무역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인상 조치를 발표하자 맞대응으로 무역방어수단(ACI)을 발동할 것을 제안했다고 중국 신화통신과 로이터 등이 전했다.
ACI란 특정국가가 정치적 목적으로 무역을 압박수단으로 쓸 경우, 유럽연합이 해당국가의 제품, 서비스, 정부조달에 제한을 가할 수 있는 일종의 '경제적 반격법'이다.
랑에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은 용납할 수 없으며 미국이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임을 보여준다"며 "유럽연합은 경제적 협박으로 간주되는 이번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ACI 발동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다만 랑에 위원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의 즉각적 보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은 나토 동맹 체제를 통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주둔 미군철수에 나선다면 당분간 안보공백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미군철수 압박 : 관세 카드와 맞물려 유럽을 옥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5월2일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의 팜비치 국제공항에서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AP통신=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을 향한 관세 압박에 앞서 유럽 주둔 미군의 철수를 통해 유럽을 '위협'하고 있다. 유럽 두둔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압박은 먼저 독일을 향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전쟁 전략을 '무모하다'고 공개비판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독일 주둔 미군 5천명의 철수를 명령한 것이다.
숀 파넬 미국 국방부 수석대변인은 5월1일(현지시각) "국방부 장관은 독일에서 약 5천 명의 병력 철수를 명령했다"며 "앞으로 6개월에서 12개월 이내에 철수가 완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2025년 12월 기준 독일에는 미군 3만6436명이 배치돼 있는데 이번 철수가 완료되면 약 3만1천명으로 14% 가량 줄어들게 된다. 독일은 일본에 이어 미군의 해외 주둔규모가 두 번째로 큰 국가다. 주독일 미군은 유럽 방위의 중추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도 주둔 미군병력을 줄일 수 있다면서 추가 병력감축을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탈리아는 (이란전쟁에서) 미국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스페인은 끔찍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이 미군 철수의향을 묻자 "아마도 그럴 것이다"고 답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란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스페인 정부는 미국 군용기의 영공통과까지 반대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미군이 빠져나갈 경우 유럽전체의 집단 방어체제에는 구멍이 생길 수 있다. 2025년 12월 기준 이탈리아에는 약 1만2600명, 스페인에는 약 38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라디오 매체 NPR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감축 압박은 경제문제와도 맞물려 있는 문제다"며 "유럽에 주둔한 미군이 줄어들 경우 유럽 회원국들이 자체 국방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짚었다.
NPR은 이어 "특히 독일은 이미 2027년까지 전체 GDP의 3%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해야 하는 역사적 규모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고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요구하는 기준치인 2%를 훨씬 웃도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