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영국 국왕이 미국 의회 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반자적 관계를 강조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4월2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연설문을 발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찰스 3세는 미국 순방 이틀째인 2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연설을 통해 "미국과 영국의 동반자 관계는 없어서는 안 될 관계"라며 "지난 80년간 양국 관계를 지탱해온 가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며, 이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전쟁과 관련한 유럽 국가들의 비협조를 비난하며 나토 조약 탈퇴까지 거론한 상황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올해는 9·11 테러 25주년이 되는 해"라며 "테러 직후 나토가 처음으로 나토 헌장 제5조(공격받은 회원국을 다른 회원국들이 함께 방어하도록 한 규정)를 발동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테러에 맞서 단결했을 때 우리는 그 부름에 함께 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군을 비롯한 동맹국 군의 헌신과 전문성은 나토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로의 방위를 위해 서약하고, 시민과 이익을 보호하며, 북미와 유럽을 공통의 적들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 말했다.
찰스 3세의 해당 발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냉전 당시 소련에 맞서며 형성된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 정신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국면에서도 발휘돼야 한다는 뜻으로도 풀이됐다.
특히 오랜 우방이었던 미·영 관계가 이란전쟁을 계기로 냉각된 점을 의식한 듯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가을 영국 방문 중 말했듯, 미국과 영국 사이의 친족과 정체성의 유대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영원하다"고 말했다.
또 미국 연방대법원이 왕권 제한과 법치 원칙을 담은 영국의 대헌장을 160차례 이상 판례에서 인용해왔다고 언급하며 "대헌장은 행정권 역시 견제와 균형의 대상이라는 원칙을 세운 기초"라고 짚었다.
이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제왕적 행정권 행사'를 에둘러 비판한 맥락으로도 읽힌다.
찰스 3세는 미국의 자연유산을 높이 평가하며 "우리 세대는 중대한 자연 시스템 붕괴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배척과 화석연료 장려 기조를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도 보인다.
찰스 3세는 1991년 모친인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두 번째로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 나선 영국 국왕이 됐다.
30분 가량 이어진 연설에서 찰스 3세는 여러 재치 있는 발언으로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 각료들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다.
현지 언론들은 "미국 대통령 국정연설에서 나타나는 당파적 기립 박수와 달리, 근래 보기 드문 초당적 분위기였다"고 평가하며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연설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는 이번 연설이 미국 정계 일부 인사들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아울러 찰스 3세가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간 긴장을 완화해주기를 기대했던 영국 정계의 구상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