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이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 약가 인하와 관련해 법원에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종전 약가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사 김정균 대표이사 사장은 최소한 2심 판결 때까지 시간을 벌게 됐지만, 이와 동시에 회사 실적을 방어하고 카나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게 됐다.
김정균 보령 대표이사 사장 ⓒ 그래픽 허프포스트코리아
20일 업계에 따르면, 카나브 약가 인하 처분에 대한 보령과 보건복지부 간의 2심 본안 소송이 본격 시작된 가운데, 보령이 제기한 ‘상한금액 인하 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인용했다.
이에 따라 보령은 대표적인 효자 품목인 카나브 제품군 약가 인하를 최소 2심 판결 시점까지 피할 수 있게 됐다.
보령의 카나브(성분명 피마사르탄)는 대한민국 제15호 신약이자 국산 최초 ARB(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 계열의 고혈압 치료제다. 혈관을 수축시키는 호르몬을 차단해 혈관을 확장하고 혈압을 낮추는 기전을 가지고 있다. 2010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고 2011년 3월 출시됐다.
보령은 올해 2월 허가 받은 카나브젯정 등 복합제 7종을 합쳐 8종의 품목으로 구성된 ‘카나브 패밀리’를 운영하고 있다. 카나브 패밀리는 국내 고혈압 치료제 1위 제품으로, 매년 16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보령 전체 매출액의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5년에는 1458억 원(약가 인하 반영)의 매출액으로 15.9%의 비중을 보였다.
◆ 카나브 약가 인하 불복 행정소송서 패소, 매출 감소 리스크 확대
효자 상품인 카나브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23년 카나브의 국내 특허가 종료되고 2025년 제네릭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6월 카나브 패밀리의 약가를 같은 해 7월부터 최대 48% 인하하겠다고 고시했다.
한국의 약가 제도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물질특허가 만료되고 제네릭이 등재되면 오리지널의 약가가 자동으로 깎이는 구조다. 퍼스트 제네릭(첫 번째 제네릭)은 오리지널 기존 약가의 59.5% 수준으로 등재되며, 제네릭 등재 1년 후 오리지널과 제네릭의 가격이 동일하게 오리지널 기존 약가의 53.55% 수준으로 일괄 인하된다. 이후 추가로 제네릭이 쌓일수록 다시 단계적으로 약가가 떨어진다.
보령은 복지부의 약가 인하 결정에 불복해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 근거로 카나브가 △본태성 고혈압 △고혈압을 동반한 제2형 당뇨병성 만성 신장질환 환자의 단백뇨 감소 등 2개의 적응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보령 쪽은 카나브의 제네릭들이 본태성 고혈압 적응증만 확보했고 단백뇨 감소 적응증 특허는 2036년까지 유효하므로, 현 시점에서 약가를 인하하는 것은 혁신 신약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부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2월 1심 판결에서 보건복지부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출시된 제네릭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본질적인 약제 구성이 같은 ‘동일제제’이며 건강보험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약가 인하로 인한 공익적 목적이 약가 인하 취소에 따르는 보령의 사익보다 앞선다고 판단했다.
이에 보령은 즉각 항소하는 한편, 실적에 약가 인하를 반영하기 위한 충당부채를 반영했다. 이 때문에 잠정실적을 수정 공시하는 소동이 있었고, 사업보고서에도 약가 인하를 반영한 실적을 공시했다. 충당부채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을 미리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보수적인 회계 처리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보령과 보건복지부의 다툼이 대법원까지 갈 것으로 내다본다. 다만 보령은 가처분 신청을 통해 최종 판결 전까지는 기존 약가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최종 승소할 때까지는 1심 판결 때처럼 충당부채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약가 인하를 사전에 실적에 반영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상급심에서 판단을 뒤집으면 이미 인식한 충당부채를 환입하는 방식이다.
보령 쪽은 “당사는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집행정지 신청과 상급심 과정으로 법리적 소명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김정균, 당장의 약가 방어에도 실적 회복 책임 막중
이번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은 단기 성과에 그친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보령 입장에선 단순히 시간을 번 상황이다.
카나브는 보령의 핵심 캐시카우로 회사의 실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실제 약가 인하가 반영되면 연간 수백억 원의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보령의 실적 성장세도 주춤한 모습이다. 앞서 보령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2024년까지 7년 연속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동반 성장하는 기록을 달성했고, 2024년에는 처음으로 ‘1조 클럽’에 가입한 바 있다.
하지만 2025년에는 눈에 띄는 실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보령은 2025년 연결기준 매출액 1조174억 원, 영업이익 651억 원, 당기순이익 643억 원을 기록했는데, 매출액만 0.03% 늘었을 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7.67%, 7.66% 감소했다.
보령의 사업부문은 만성대사질환, 항암, 전문질환, 일반의약품 등 크게 4개로 나뉘는데, 이 중 전문질환 부문만 매출액이 늘었을 뿐 다른 3개 사업부문에서는 매출액이 감소했다.
이 같은 상황으로 볼 때 이 회사 오너 3세 김정균 대표이사 사장은 카나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힘써 실적과 수익성을 방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 사장은 단기 대책으로 카나브 복합제 확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고혈압 환자는 이상지질혈증, 당뇨병 등 다른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복합제 전략이 유효하다.
보령은 올해 3월에도 이상지질혈증 치료제로 사용되는 아토르바스타틴과 에제티미브를 카나브에 결합한 3제 복합제 ‘카나브젯’을 식약처에서 허가받았다. 카나브젯은 6월쯤 출시될 예정이다.
김 사장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특히 항암제 영역을 눈여겨 보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지난해 9월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로부터 19개국 판권을 인수한 항암제 ‘탁소텔’이 있다. 보령은 탁소텔을 자사 브랜드로 전환해 올해 국내 시장부터 출시할 예정이다.
앞서 보령은 특허 만료 후에도 여전히 시장성이 있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통째로 인수하는 LBA(Legacy Brand Acquisition) 전략을 자주 써 왔다. 탁소텔도 이에 해당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항암 신약 비중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대표적으로 보령은 혈액암 치료제 신약후보물질 BR2002에 대한 2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지난해 승인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