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페인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의 영공 통제 조치로 미군 비행사들의 비행 시간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 공군 조종사들은 이로 인한 초장거리 비행 탓에 각성제를 먹고 폭격에 나선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B-1B 폭격기. ⓒ인스타그램 'realdonaldtrump', U.S. Air Force
영국 더타임스는 5일(현지시각) 이란 전쟁에 투입되는 미국 군용기 조종사들이 장거리 비행을 소화하기 위해 ‘모다피닐’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복용하는 약물인 모다피닐은 일명 ‘고 필(go pill)’이라고 불리는 각성제의 일종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RAF) 야간 폭격기 승무원들의 각성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됐던 ‘웨이키-웨이키(Wakey-Wakey)’ 벤제드린의 계보를 잇는 약물이다.
해당 약물은 수백 마일에 이르는 우회 비행과 공중급유 횟수 증가로 인해 최대 18시간에 달하는 비행 임무를 수행하는 승무원들에게 지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약물 의존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모다피닐을 규제 물질 4등급으로 분류해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처럼 약물까지 복용하는 장시간 비행임무는 유럽 국가들의 자국 영공 통과를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에 반대하는 유럽 국가들은 미군 항공기에 대한 영공 통과를 제한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의 전면적인 비행 금지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부분적 제한은 미군 지휘부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제한 조치는 실제 작전 수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국 글로스터셔의 RAF 페어퍼드 기지에서 출격하는 B-1B 및 B-52 폭격기의 경우, 원래는 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 영공을 지나 지중해를 거쳐 이라크 또는 튀르키예 방면으로 향하는 직항 항로를 이용하면 왕복 비행시간이 약 10시간30분 수준이었다.
이 과정에서는 통상 최대 4차례의 공중급유가 이뤄졌지만, 현재는 남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항로를 이용하면서 최대 8차례까지 급유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중급유는 45~50분에 걸쳐 정밀한 기동을 필요로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미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에서 출격하는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의 상황은 더욱 가혹하다. 이들의 왕복 임무 시간은 기존 약 32시간에서 최대 40시간까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공중급유가 필요하다.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영공 통과 거부로 인해 미군 급유기 전력은 극도로 빠듯한 일정 속에서 운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승무원 피로 누적과 동부 지중해 상공 ‘공중급유 회랑’ 내 항공기 밀집도 증가가 지난 12일 이라크 상공에서 발생한 KC-135 두 대의 충돌 사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해당 사고로 승무원 6명이 사망했다.
우회 항로는 미군 작전의 은밀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신기를 켠 채 비행하는 공중급유기들의 움직임이 공개 항공추적 사이트에 그대로 포착되면서, 통상 은밀히 비행하는 폭격기들의 작전 경로와 시점이 실시간으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오픈소스 정보(OSINT) 분석가들이 미군의 공습 임무와 취약한 공중급유 작전을 면밀히 추적하고 있으며, 이란 러시아 중국 역시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까닭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에 대한 불만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터뜨렸다. 최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 프랑스가 이스라엘로 향하던 군수 물자 수송기의 영공 통과를 막았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프랑스는 매우 비협조적이었다(Very unhelpful)”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측은 이란 공습과 직접 관련된 항공기만 차단했을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