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건설은 수년째 한진칼 주가를 끌어올려온 큰 손이다. 호반건설이 2022년 한진칼 지분을 매입한 시점부터 한진칼 주가는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최근 호반건설이 한진칼 지분을 또 늘렸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지분 확대 흐름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한진칼 지분은 현재 18.78%로, 지난해 5월 18.46%였던 것에 비해 0.32%포인트 증가했다. 소식이 알려진 18일 한진칼 주가는 4% 올랐다.
호반건설의 한진칼 지분 투자를 단순 투자로 보기엔 지분율이 높고, 경영권 탈취 움직임으로 보기엔 행보가 신중하다. 하지만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든 호반건설은 손해 볼 것이 없는 '꽃놀이패'를 쥐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호반건설의 한진칼 지분 매집이 결국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의 승계 구도를 완성하기 위한 고도의 포석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허프포스트코리아
26일 열린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호반건설을 향한 한진그룹 측의 경계심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주총 메시지를 통해 "안정적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겠다"며 경영권 방어 의지를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더 날카로웠다. 조 회장의 메시지를 대독한 류경표 한진칼 부회장은 호반건설의 지분 매입에 대해 "왜 그럴까 생각한다"며 비판적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류 부회장은 "우군을 확보하고 있으며, 열심히 방어를 잘 하겠다"고 경영권 방어 전략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시장이 기대하는 '경영권 분쟁'의 가능성이 살아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호반건설은 업계의 시선과 달리 수년째 경영권 분쟁 가능성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한진칼 지분 매입 이유에 대해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진칼의 어떤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느냐는 물음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시너지 등 성장 모멘텀을 기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호반건설은 경영권 획득 목적 없이 한진칼 단순 투자로도 충분히 이득을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호반건설이 한진칼 지분을 처음 매입한 시점과 현재의 주가를 비교해도 호반건설의 설명이 틀리진 않는다. 2022년 3월21일 호반건설이 한진칼 주식을 처음 취득한 시점에 6만700원이었던 한진칼 주가는 25일 종가 기준 108.7% 상승한 12만6700원에 거래됐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이익만 최소 1천억 원이 넘는다. 호반건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한진칼 지분 가치는 5788억 원에 이르는데, 취득 원가 4607억 원임을 고려하면 이미 1181억 원 가량의 이익을 본 셈이다.
따라서 호반건설의 지분 투자가 실제 경영권 분쟁을 노린 것이 아니라 '노이즈 마케팅'에 가깝다는 시선도 있다. 호반건설이 인수합병이나 경영권 참여 같은 큰 그림을 갖고 투자를 하는 것처럼 시장이 기대하게 한 뒤, 주가가 오르면 지분을 매각하는 패턴을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2015년 호반건설이 금호산업 인수 의사를 밝히며 시장을 쥐락펴락한 전력이다. 호반건설이 인수 의사를 밝히자마자 금호산업 주가는 급등세를 탔고, 이미 금호산업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입해왔던 호반건설은 본격적으로 인수전에 뛰어들기에 앞서 지분을 매각하며 300억 원가량의 시세차익을 봤다.
다양한 기업을 두고 이런 패턴이 반복되자 업계에서는 호반건설의 '인수합병 실패'가 차라리 하나의 투자 방식에 가깝다고 보는 시선이 나왔다. 시장에 인수 의사를 밝히고 대상 기업의 지분 가치를 높인 뒤, 인수전을 전후로 그동안 확보한 지분을 팔아 시세차익을 얻는 방식으로 투자하면서 이익을 남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패턴이 시장에서 부정적으로 읽히면서 호반건설이 인수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지분 매입을 통해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퍼뜨리면서, 주가가 올라간 시점에서 되팔아 시세차익을 얻는 패턴이 새로 등장했다.
지난해 LS그룹 지분을 매입한 뒤 시장에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대두되자 전량 매각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LS그룹은 호반그룹의 계열사 대한전선과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호반건설이 LS그룹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시장에 적대적 지분 매입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신호를 줬다. 이후 호반건설은 LS그룹 지분을 전량 매각해 1천억 원가량의 이득을 얻었다.
하지만 단순히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라고 보기엔 18.78%라는 지분 규모가 결코 가볍지 않다. 업계에서는 호반건설의 이 같은 '조용한 매집'이 결국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의 승계 구도를 완성하기 위한 고도의 포석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싣고 있다.
현재 호반그룹의 후계 구도는 장남인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 사장이 호반건설을, 차남인 김민성 부사장이 호반산업을 맡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다. 문제는 주택 경기에 지나치게 편중된 사업 구조다. 건설업황이 꺾일 때마다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호반은 오랫동안 비건설 분야로의 확장을 꾀해왔다.
만약 호반건설이 경영권 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한진칼의 주인이 되거나 경영에 깊숙이 참여하게 된다면, 이는 김대헌 사장의 가장 강력한 경영 성과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금호산업) 인수전 당시에도 이름을 올렸던 호반이 한진칼을 통해 항공업에 진출하는 시나리오는, 김 사장이 건설을 넘어 그룹의 외연을 넓혔다는 상징적인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의 눈은 산업은행이 보유한 10.58%의 지분으로 향한다. 현재 조원태 회장 측 우호 지분은 약 35.46%로 호반건설(18.78%)을 크게 앞서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보유 지분을 시장에 내놓고, 이를 호반이 넘겨받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상황은 반전된다.
이 경우 호반의 지분율은 29.36%까지 치솟으며 조 회장 측과의 격차를 6.1%포인트 차로 좁히게 된다. 주총 현장에서 한진칼 측이 "우군을 확보하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산은의 결정에 따라 호반건설이 단순 투자자에서 포식자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