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화장품을 사본 경험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예전 경험을 빌리자면 편의점은 급하게 치약 떨어졌을 때, 립밤 하나 살 때 들르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편의점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여기 CJ올리브영인가?” 싶은 장면이 펼쳐진다. 조명 앞에 서서 얼굴을 비추고, AI에게 퍼스널 컬러를 진단받는다,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나만의 섀도우 팔레트’도 만들어 볼 수 있다.
가꾸(가방 꾸미기), 신꾸(신발 꾸미기), 립꾸(립글로즈 꾸미기)에 이어 이제는 ‘팔꾸(팔레트 꾸미기)’가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번질 조짐이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가 26일 퍼스널 컬러를 진단하고 나만의 색 조합으로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AI형 키오스크 서비스를 선보였다. ⓒBGF리테일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업계 최초로 AI 기반 퍼스널 컬러 측정과 맞춤형 화장품 제작 서비스를 도입했다고 26일 밝혔다. 기기 이름은은 ‘메이크업 팔레트 메이커’다.
사용 방식은 직관적이다. 포토박스처럼 생긴 키오스크 앞에 서서 얼굴을 촬영하면 AI가 피부톤을 분석해 어울리는 색 조합을 추천한다. 진단에 따라, 또는 내 맘에 드는 색을 선택해 나만의 메이크업 팔레트를 직접 구성할 수 있다.
100여 가지 색상 가운데 직접 4가지 색을 골라 조합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진다. 매트 타입 섀도우 조합 2가지와 글로우 타입 섀도우 조합 2가지로 4구 팔레트 한 개를 완성할 수 있다. 색상에 따라 아이섀도우와 치크, 브로우를 겸용할 수 있는 팔레트다.
가격도 가볍다. 5천 원에 팔레트 만들 수 있어 ‘한 번쯤 해볼까’하는 체험형 소비에 부담 없다. 다이소 화장품이나 가성비 제품을 선호하는 MZ세대 취향에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편의점의 핵심 고객층이 MZ세대인 점을 제대로 공략한 셈이다.
이 서비스는 26일 서울 시내 2개 점포에서 먼저 시작됐다. CU 호텔피제이점과 CU 연남아지트점이다. 각각 명동과 연남동 위치한 점포로 관광객을 비롯한 유동인구가 많고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와 경험 중심 소비가 활발한 상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초기 반응과 수요를 빠르게 확인하기에 적합한 입지라는 점에서 시범 운영 거점으로 선택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특화 서비스는 다음 달 학원가 중심 점포로 확대되고, 연내에는 100여 곳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대학가, 관광지, 외국인 방문이 많은 상권이 우선 대상이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확실히 다를 것으로 보인다. 물건을 집어 계산대로 향하던 동선이 이제는 체험과 선택, 제작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편의점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자연스럽게 ‘구경거리’가 생기는 흐름이다.
사실 CU의 이런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편의점을 ‘작은 놀이터’처럼 바꾸는 실험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1인 가구가 많은 원룸촌 인근 점포에는 과일 키오스크를 들여 ‘간편 건강식’을 제안하고, 외국인 방문이 많은 점포에는 타투 키오스크를 설치했다, 트렌드 반영이 빠른 성수동 상권에는 DIY 디저트존을 마련했고, 한강을 따라 러닝을 즐기는 ‘러너’들의 중심지 여의도에는 러닝 체험 공간까지 들어섰다.
이러한 변화는 편의점의 역할이 상품 구매 공간을 넘어 취향을 소비하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점은 유통 플랫폼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라면 화장품은 CJ올리브영, 저렴한 생활용품은 다이소, 식음료는 편의점이라는 식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다이소는 건강기능식품을 팔고, CJ올리브영은 헬시플레저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편의점에서는 퍼스널 컬러를 진단하고 화장품까지 제작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에 따라 경쟁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같은 업종의 옆 가게가 아니라 경험을 파는 모든 공간이 경쟁자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