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이 숨졌다. 향년 88세다.
그의 사망 소식은 26일 보도를 통해 알려졌으며, 최근 건강 악화로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 입소해 치료를 받던 중 지난 25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12월 14일 고문기술자 이근안씨가 서울 성동구의 한 식당에서 연 자서전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고백' 출판기념회에서 자신의 심경을 고백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근안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민주화 인사와 공안 사건 관련 피의자들을 상대로 자행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다. 특히 남민전 사건과 김근태 전 민청련 의장 고문 사건 등 다수의 공안 사건에 연루됐고, 이른바 ‘서울대 무림사건’에서도 가혹 행위를 주도한 인물로 지목됐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해 1981년 내무부 장관 표창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화 이후 그의 행적을 둘러싼 진상 규명이 본격화되자 이근안은 오랜 도피 생활을 이어갔고, 1999년 자수한 뒤 고문과 불법 구금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지만, 그의 이름은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존재로 각인됐다. 최근에도 과거 고문 사건과 관련해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한 금액을 일부 부담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법적·도덕적 책임 논란까지 이어졌다.
출소 이후 그는 목사가 돼 종교 활동을 이어가며 공개 간증과 자서전 등을 통해 과거를 반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그 진정성에 꾸준히 의문을 제기해왔다. 실제로 그는 본인의 자서전에서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이 일할 것”이라고 했고, “간첩과 사상범을 잡는 것은 애국이었다”고 주장해 공분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