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겸 롯데화학군 총괄대표 사장이 정부 주도의 석유화학 사업재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수익성 회복에 박차를 가한다.
지난해 9천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본 롯데케미칼은 중동 전쟁 리스크라는 초대형 불확실성에도 직면해 있다. 이 사장에게는 대산과 여수에서 개시한 롯데케미칼 기초화학 부문 사업재편이 수년째 지속하고 있는 적자를 벗어날 선결과제이자 경영 정상화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영준 롯데케미칼 대표이사 겸 롯데화학군 총괄대표 사장. ⓒ롯데케미칼
2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대산의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 합작법인) 결합 이외에 여수의 롯데케미칼과 여천NCC(한화솔루션·DL케미칼 합작법인)의 기업결합 심사도 신속하면서 면밀하게 들여다보며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대산 지역의 사업재편안 신청 뒤 관련기업들의 기업결합을 심사를 해왔다. 이번 롯데케미칼과 여천NCC의 결합도 석유화학산업의 전체 가치사슬(밸류체인)과 인접 시장, 중소기업 등 거래상대방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점 등을 고려해 사안을 살피기로 했다.
이처럼 롯데케미칼은 정부가 연간 에틸렌 생산량 370만 톤 감축을 목표로 주도하고 있는 석유화학 사업재편의 1호와 2호 모두 유일하게 참여하게 됐다. 특히 정부가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이번 재편에서 대산에 이어 여수에서도 물꼬를 튼 것이다.
김정관 산업부통상부 장관도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순신의 바다 여수에서 석유화학 위기의 파고를 넘어 구조개편에 나선다"며 "대한민국 석유화학 산업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각사 차이를 극복하신 여수 석유화학업계에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과 여천NCC 등 참여사들은 지난 20일 공시를 통해 여수 사업재편계획서 최종안을 산업부에 제출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업스트림 부문 NCC 설비 쪽을 보면 여천NCC 3개 공장 가운데 연산 91.5만 톤의 2공장과 47만 톤 규모의 3공장, 모두 합쳐 138.5만 톤을 폐쇄하는 방안이 세부안으로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여천NCC 1공장의 90만 톤과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의 123만 톤을 신설법인에서 운영하는 방향이다.
다운스트림 부문에서는 통합 운영을 통해 효율화를 꾀하면서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의료용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자동차 전선용 기능성 폴리올레핀 엘라스토머(POE) 등 고부가 제품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하겠다는 방침도 세워졌다.
이영준 사장은 석유화학 업계에서도 가장 빠르게 사업재편에 동참하면서 오랫동안 부진에 빠져있는 롯데케미칼 실적, 특히 기초소재(기초화학) 부문 수익성을 회복하는 데 고삐를 죄고 있다.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부문 영업이익은 2021년 1조2298억 원을 기록했지만 2022년부터 매년 수천억 원대 영업손실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에는 기초소재 부문 손실은 8577억 원이고 이는 전체 영업손실 9431억 원으로 이어졌다.
롯데케미칼 기초소재 부문은 국내 NCC 설비, 말레이시아법인 LC타이탄, 미국법인 LCUSA로 구성돼 있고 이 가운데 국내 NCC 설비로 구성된 기초소재 영업손실 규모가 적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국내 설비에서는 대산의 연산 110만 톤, 여수 123만 톤이 손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석유화학 사업재편에 따른 효과가 클 수 있는 셈이다.
대산에 이어 여수 공장까지 사업재편이 마무리되면 향후 국내 NCC 사업이 롯데케미칼 연결실적에서 제외되면서 영업이익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최종 통과된 대산 사업재편안에 따라 롯데케미칼은 연간 2천억 원의 손실을 축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산 공장이 연결실적에서 제외되면서 감가상각비 절감효과 1500억 원과 순차입금 축소에 따른 금융비용 절감효과가 500억 원가량이다.
여수 사업재편 관련해서는 추후 산업부의 최종 승인 때 확정될 추가 출자 방안이나 정부의 금융지원 내용 등이 결정되면 구체적 손실 감소 폭의 윤곽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증권업계에서는 기존 생산량을 근거로 대산과 여수 사업재편에 진행 중인 LC타이탄 매각까지 포함하면 연간 적자를 5800억 원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을 하고 있다.
최근 중동 전쟁에 따라 석유화학업계의 불확실성이 극심해진 것은 이 사장이 사업재편을 차질없이 추진해 미래 실적 회복 기반을 다져놔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도 꼽힌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뒤 '글로벌 대동맥'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중동산 원료(나프타)의 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
실제로 최근 롯데케미칼 등 주요 석유화학기업들은 원료 조달 및 제품 운송 등의 어려움을 이유로 고객사에게 불가항력 가능성을 공지했다. 불가항력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질 때 적용되는 조치를 말한다. 기업이 불가항력을 선언하면 계약을 이행하지 못해 발생하는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으로 전쟁 발발 이전 톤당 600달러 대였던 나프타 가격은 현재 1100달러 이상으로 급등하기도 했다.
전쟁이 롯데케미칼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제품 가격 상승이라는 '반사이익'이 롯데케미칼 단기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이는 방향성마저 예측할 수 없도록 불확실성이 큰 상황을 보여주는 관측으로도 풀이된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호르무즈 봉쇄 영향은 한국 NCC가 가동된 이래 처음이라 예측이 불가능하고 수요와 견줘 공급이 30% 부족했던 적도 역사상 단 한번도 없다"며 "아쉬운 점은 한국 기업의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아 가동률이 낮을 것이라는 점이지만 제품 공급 부족에 가격이 상승하며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사장은 올해 외형 성장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고부가가치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사장은 20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제50기 정기 주주총회 인사말에서 "올해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와 원료 수급 불안정으로 어려운 경영 환경이 지속될 것"이라며 "기존 범용 석유화학 중심의 구조에서 탈피해 수익성과 성장성을 겸비한 스페셜티 화학 기업으로 전환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