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2월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국무회의를 거쳐 3월6일 공포·시행됐다.
이에 따라 기업은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해야 하며, 자사주를 기반으로 하는 사채 발행도 금지된다.
하지만 경영계에서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사라졌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으로부터 기업을 지키는 수단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다.
경영계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새로운 제도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이 대표적이다.
포이즌필과 차등의결권 등을 통한 경영권 방어보다 투명한 지배구조를 통한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는 내용의 이미지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에 제미나이가 생성한 이미지 ⓒ AI
포이즌필은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되는 경우 공격자를 제외한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싸게 배정함으로써 공격세력의 지분율을 희석하는 제도다.
외부 공격을 방어하는 데 효율적이지만 발행주식 수가 증가하므로 기존 주주가치에 영향을 준다는 단점이 있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일반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원래 1주당 한 개의 의결권이 원칙이지만 차등의결권이 부여된 주식은 1주당 10표의 힘을 가질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차등의결권은 적은 지분으로 많은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지만 ‘1주당 1표’라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는 상장사의 경영권이 변경될 때 인수자가 피인수기업의 최대주주뿐만 아니라 소수주주의 주식도 일정 비율 이상 같은 가격으로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제도다.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세력의 부담을 늘리고 일반주주를 보호할 수 있지만, M&A를 통한 사업 확장을 어렵게 하고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같은 사업 재편을 저해할 수 있다.
◆ 새로운 경영권 방어 제도 역시 오너 중심 세습경영 수단 될 확률 높아
시장 전문가들과 주주들은 경영계의 요구가 그간의 손쉬운 경영권 방어 수단을 유지하려는 ‘관성’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한다.
먼저 자사주 활용 관행은 이미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정부는 2011년 상법을 개정해 종전까지 원칙적으로 금지됐던 자사주 취득을 자율화한 바 있는데, 이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확대해 기존 배당 중심의 주주환원 수단을 다양화하고 잉여현금을 활용한 재무 전략의 유연성을 확장하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자사주의 다른 측면에만 집중했다.
특히 회삿돈으로 사들인 자사주를 지배력 유지라는 사익을 위해 쓰는 것은 그 자체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지분은 오너 경영인이 자신의 자금으로 직접 매입하는 것이 합당하다.
새로운 경영권 방어 수단을 달라는 것이 ‘염치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간 한국의 기업 오너들은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유지해 왔고, 이는 만성적인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원인이 됐다. 무엇보다 경영권 방어 수단을 고민하기에 앞서 경영을 잘해서 기업가치를 올리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기본’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한국의 기업들은 가족 구성원과 계열사를 동원한 복잡한 지배구조 때문에 지배주주의 지분율에 견줘 실질적 지배력이 크게 나타나는 구조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 말하는 적대적 M&A의 위험은 상당히 과장된 주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요컨대 그간의 한국적 상황으로 볼 때 새로운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은 다시 ‘오너 중심 세습경영’의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 이는 그간 쌓아 온 기업 거버넌스 개혁 성과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결국 핵심은 ‘신뢰’의 문제다. 새로운 경영권 방어 수단을 도입하자는 재계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폐쇄적·비민주적 이사회를 투명하고 민주적인 이사회로 바꾸고 △일감 몰아주기와 사익편취를 통한 편법승계를 중단하고 △기업가치를 낮추는 중복상장을 지양하고 △적은 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하는 순환출자·상호출자를 해소하고 △자사주 소각과 배당 등 주주환원을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시장과 주주의 신뢰를 얻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