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쇼핑의 ‘조력자’를 넘어 ‘대리인’으로 진화하고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상품을 고르던 이커머스 시대에서, 이제는 내 취향에 맞춰 알아서 탐색·비교·쇼핑·결제까지 끝내는 ‘AI커머스’ 시대로 접어드는 모습이다.
AI 기술 발전으로 유통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사진은 강릉의 한 전통시장이 물건을 사기 위한 소비자들로 붐비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7일 글로벌 테크업계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유통 구조 자체의 재편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벤처캐피털 앤드리슨호로위츠는 “전자상거래의 일부는 AI가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30년이면 미국 소비자의 절반이 AI 에이전트를 통해 쇼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 역시 AI가 재편할 글로벌 쇼핑 시장 규모가 1조 달러(약 1400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이 변화의 핵심은 쇼핑에서의 ‘역할 분담’이다.
밴처캐피털 업계는 AI커머스 시대의 쇼핑은 두 갈래로 나뉠 것으로 보고 있다. 비교와 정보 탐색이 중요한 식료품, 화장품, 전자기기 등의 상품군은 AI가 맡고, ‘취향 소비’나 자동차·주택 같은 ‘인생형 소비’만 인간의 영역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AI커머스 시대에는 ‘생각할 필요가 없는 소비’는 AI가 대체하고, 사람은 ‘생각하고 싶은 소비’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소비자는 더 이상 검색창을 열지 않는다. 대신 AI와 대화를 나눈다. 네이버가 도입한 ‘쇼핑 AI 에이전트’는 이러한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AI에게 “대학생에게 적당한 노트북을 추천해줘”라고 말하는 순간, 조건 정리부터 성능·가격 비교, 사용자 후기까지 한 번에 제시된다. 여러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비교하던 과정이 하나의 대화로 압축되는 순간이다.
결제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마스터카드는 최근 AI가 교통수단을 검색하고 예약한 뒤 결제까지 완료하는 거래를 구현했다. 사용자가 목적지만 입력하면 이동수단 선택부터 결제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으로 이어진다. 쇼핑의 마지막 단계였던 ‘결제’마저 AI 영역이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상품을 고르는 순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 상품이 도착하는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통해 커머스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편하고 물류 영역까지 혁신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수요를 미리 예측해 재고를 배치하고 배송 경로와 시간을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더 빠르고 정교한 배송을 구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상품을 고르는 순간부터 결제, 배송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AI 흐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 경쟁은 이미 미국에서 먼저 불붙었다.
아마존은 쇼핑 도우미 ‘루퍼스’로 상품 탐색을 대화형으로 바꿨고, 구글은 AI 간 결제와 데이터 교환을 위한 표준을 구축에 나섰다. 오픈AI는 챗봇 안에서 검색과 결제를 동시에 처리하는 기능을 선보이며 쇼핑의 무대를 ‘플랫폼’에서 ‘대화’로 옮기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쇼핑의 모든 과정을 하나의 AI 안에 담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소비자는 쇼핑을 온전히 맡기게 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게 느껴진다. ‘귀찮은 쇼핑’은 사라지고 ‘즐거운 쇼핑’만 남는다.
세제나 생수처럼 필요에 의해 반복 구매하는 상품은 AI가 대신 채운다. 가격 비교와 할인 탐색도 자동이다. 반면 옷을 고르거나 취향에 맞는 가구를 찾는 일처럼 ‘고르는 재미’가 중요한 쇼핑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결국 AI커머스는 쇼핑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쇼핑의 성격을 바꾸는 기술에 가깝다.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취향 소비’가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