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거리예술가 뱅크시(Banksy)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로이터 보도로 예술 커뮤니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은 수천만 원에서 수백억 원에 거래될 만큼 예술계에서는 주목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술 문외한도 경매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그의 작품이 낙찰됐다는 소식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뱅크시(Banksy) –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Balloon), 2002, 스텐실, 워털루 다리(Waterloo Bridge), 사우스뱅크, 런던, 사진: Dominic Robinson, CC BY-SA 2.0
17일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보도를 종합하면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벽화와 출입국 기록, 여권 정보 등을 추적한 조사 결과 뱅크시가 1973년 영국 브리스틀 출신 작가 로빈 거닝엄(Robin Gunningham)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뱅크시는 누구?
뱅크시는 1990년대 활동을 시작한 영국의 익명 거리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풍자적 그래피티(벽화)와 독특한 스텐실 기법을 결합해 전쟁과 자본주의, 불평등과 감시사회 등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아왔다.
그는 활동 초기부터 자신의 신원을 철저하게 숨겨왔으며 2026년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 정체를 밝힌 적이 없어 비밀에 싸여 있다.
뱅크시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이유는 단순한 '거리의 낙서'를 넘어서 강렬하게 사회비판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인 '풍선을 든 소녀(Girl with Balloon)', '사랑은 허공에-꽃을 던지는 사람(Love is in the Air-Flower Thrower)' 등은 전쟁과 평화, 이민과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뱅크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결정적 사건으로는 2018년 소더비 경매가 꼽힌다. 이 경매 행사에서 '풍선을 든 소녀'가 약 140만 달러에 낙찰되는 순간, 뱅크시는 액자 안에 비밀리에 설치한 파쇄기를 작동시켜 작품 일부를 갈기갈기 찢어지게 했다. 이 퍼포먼스는 전 세계 언론에 알려지면서 그를 '예술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2026년 로이터 신원조사
뱅크시(Banksy) – 사랑은 허공에-꽃을 던지는 사람(Love Is In The Air - Flower Thrower), 2005, 애쉬 살롱 스트리트(Ash Salon Street), 베들레헴, 요르단강 서안 지구(West Bank), CC BY-NC-SA 2.0 by jlevinger
로이터는 이번달 13일 심층 취재를 통해 1973년 잉글랜드 남서부 도시 브리스틀에서 태어난 로빈 거닝엄이 수십년 간 공개적으로 신원을 숨겨온 뱅크시의 실제 인물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로이터는 이번 보도에서 거닝엄이 그 뒤 데이비드 존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2000년 뉴욕에서 거닝엄이 체포될 때 자필서명이 담긴 자백서, 경찰 및 법원 문서, 그리고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피해지를 방문해 작품을 남긴 행적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우즈베키스탄 경제 매체 쿠르시브(Kursiv)에 따르면 뱅크시의 변호사 마크 스티븐스는 로이터의 보도 내용 일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뱅크시의 신원이 거닝엄인지 여부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성과 작품의 예술적 가치 - 들썩이는 예술계
뱅크시(Banksy) – 날아가는 풍선 소녀(Flying Balloon Girl), 2005, 스프레이 페인트, 분리 장벽(separation wall), 팔레스타인, 사진: CC BY 2.0 by Bruce’sArtCollection
문화 비평계에서는 뱅크시의 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뉴욕 기반 문화비평 매체 RIOT.NYC는 "뱅크시의 익명성은 관람객이 아티스트가 아닌 예술 자체에 집중하고 마주하도록 만든다"고 분석했다. 얼굴도, 실명도, 소셜미디어 계정도 없기 때문에 뱅크시의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은 공백을 상상력과 개인적 해석으로 채울 수 있고, 모든 관람객이 '공동 창작자'가 된다는 논리를 펼쳤다.
런던 앤디파 갤러리(Andipa Gallery)의 분석에 따르면 뱅크시의 작품들은 특히 정치적 메시지가 강하기 때문에 신원이 공개되면 비평가들이 작품 자체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계층과 배경 등을 공격의 빌미로 삼을 위험성이 있다고 짚는다.
앤디파 갤러리는 "작가가 공개적으로 식별 가능하다면 비평가들은 그의 배경이나 동기와 연결지어 이 발언들을 더 쉽게 무력화하거나 개인화할 수 있을 것이다"며 "익명으로 남음으로써 뱅크시는 작품이 홀로 서게 하고, 그 보편성을 부여해 영향력을 강화한다"고 말했다.
뱅크시는 실제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무언가를 말하고 사람들이 듣게 하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 신원공개를 주장하는 로이터에 침묵하는 뱅크시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