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개봉한 이 작품은 하루 만에 약 12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코로나19 이후 장기 침체에 빠졌던 국내 영화계에 김도영 감독의 ‘만약에 우리’(누적 관객 238만 명, 개봉 첫날 11만 326명)에 이어 또 하나의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장항준 감독의 상상력이 빚어낸 그간 없던 단종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쇼박스
영화는 단종의 비극을 중심으로 계유정난 이후 폐위된 그의 생애 마지막 4개월, 강원도 영월 유배지에서의 삶을 그려낸다.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단종은 대체로 유약하고 비극적인 어린 군주이자 권력 투쟁의 희생자로 묘사돼 왔다. 드라마 ‘한명회’, 영화 ‘관상’ 등에서도 이러한 이미지가 반복됐으며, 대부분 계유정난과 폐위 과정에 집중했을 뿐 단종의 마지막 나날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드물었다.
장 감독은 실록에 남은 '노산군(단종)이 돌아가시자 엄흥도가 슬퍼하며 곡을 하고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평생을 숨어 살았다'는 두 문장에 상상력을 더해 단종의 최후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특히 엄흥도의 시선을 통해 폐위된 어린 군주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를 향한 깊은 연민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그는 “뻔한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며 “실제 단종은 총명하고 활쏘기에도 능해 세종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속 단종 역시 초반의 생기 없는 모습에서 점차 벗어나 유배지에서 마을 주민들과 유대감을 쌓으며 왕다운 위엄과 강단을 되찾아간다.
사람들이 ‘유약한 정치의 희생자’ 단종을 기억하는 이유
어린 단종의 초상화. ⓒ연합뉴스
단종은 세종, 태종, 광해군 등과 함께 대중매체에서 유독 자주 조명되는 왕이다. 뚜렷한 치적이 없음에도 오늘날까지 널리 기억되는 것은 어찌보면 기이한 일이다. 실제로 그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군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단종제가 열리며 그를 기리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통해 의미 있는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된 세조가 냉혹한 인물이었지만, 통치자로서는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이어 세조의 입장에서 왕권 찬탈의 정당성을 설명하며 그의 업적을 일정 부분 긍정했다.
그러면서도 유 작가는 “(세조의 문제는) 목적이 정당하다면 옳지 않은 수단을 써도 되는가라는 인생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단종과 세조가 오늘날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비교하며 “단종과 관련된 장소와 이야기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세조가 머물렀던 곳은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작가는 이어 “단종은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부당한 방법의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추모하는 방식으로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는 뜻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결국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세조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라고 덧붙였다.
즉 정치적 실책이나 정통성의 흠결 없이 권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 단종이기에 사람들은 더욱 그를 기억하고 추모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럴듯한 대의명분 아래 부정한 방법과 수단을 정당화하는 일이 역사 속에서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경계의 의미 또한 그 기억 속에 담겨 있다. 지금까지 단종이 지속적으로 소환되는 이유는, 어떤 명분으로 포장하더라도 부당한 선택은 결국 역사와 민중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