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9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연수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가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한 후보자는 김민석 총리가 다져놓은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 정상화의 기반 위에서 이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취임 2년 차 국정 비전인 '대체불가 대한민국' 실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국회 인준을 통과하면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국무총리가 된다. 2006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후 정확히 20년 만이다. 한 전 총리 이후 맥이 끊겼던 여성 총리의 계보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여성 총리 또는 장관의 역사는 정부 수립 뒤 초대 내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임영신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한민국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여성 장관으로 임명됐지만 이는 상징적 존재에 가까웠다. 이후에도 대부분의 장관직은 남성들의 몫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의 장관직 진출은 조금씩 늘어났고, 김영삼 정부를 기점으로 여성 장관 기용이 눈에 띄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은 2001년 여성부(현 성평등가족부) 신설이었다. 이를 계기로 여성 장관 숫자도 빠르게 증가했다. 그러나 여성부 장관은 사실상 여성에게 배정된 자리인 만큼 여성의 유의미한 장관직 진출 사례로 보기는 어렵다.
강금실 법무부장관(맨 왼쪽)이 2003년 6월2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검사장회의에서 검찰 수뇌부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정부 시절 깜짝 인사로 발탁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으로 스타성도 갖췄다. 2003년 강 장관이 임명될 당시 검찰 조직은 남성 중심주의와 강한 상명하복 문화를 가진 집단이었다. 여성 변호사 출신인 강 장관의 등장을 두고 검찰은 크게 반발했다.
여성, 비검찰 출신, 낮은 기수라는 강 장관의 이력 자체가 당시 참여정부가 추진하려 했던 검찰개혁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맡은 강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평검사들과 공개 대화 시간까지 마련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검사들의 무례한 질의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나온 노 대통령의 "이쯤 가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는 발언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되곤 한다.
한명숙 총리(왼쪽)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2006년 7월1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호우피해 복구대책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의 고위 공직 진출은 법무부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6년에는 한명숙 전 총리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에 올랐다.
한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여성부 장관을 지내며 호주제 폐지와 출산휴가·육아휴직 제도 확대 등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굵직한 성과를 낸 인물이다. 2003년 참여정부 초대 환경부(현 기후에너지부) 장관을 맡았고, 이러한 경륜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르게 된다.
한 전 총리는 1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며 특유의 온건함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안정적 보좌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 때 발탁된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도 당시 깜짝 인선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외교부 장관이었다.
문재인 대통령(맨 오른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맨 왼쪽)이 2017년 6월18일 청와대에서 차담회 장소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인선 초기에는 야당을 중심으로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반대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강 장관은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등 주요 외교 현안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였고, 유엔에서 쌓은 국제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경화 장관은 3년 8개월 동안 장관직을 수행하며 개헌 이후 역대 외교부 장관 가운데 두 번째로 긴 재임 기록을 남겼다. 현재는 이재명 정부 초대 주미대사를 맡고 있다. 이 역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주미대사라는 기록으로 남았다.
한성숙 후보자는 역대 여성 총리·장관 가운데서도 가장 이례적인 경력을 가진 인사다. 그는 사기업, 그것도 정보통신(IT) 업계를 대표하는 네이버 최초의 여성 대표이사 출신이다. 2017년부터 5년간 회사의 수익을 견인하는 네이버페이·네이버쇼핑 등 주요 플랫폼 사업을 안정적으로 안착시켰고, 업계에서는 '일벌레'로 불릴 만큼 강한 업무 몰입도와 추진력으로 유명했다.
역대 여성 총리와 장관 상당수가 정치인·관료·법조인 출신이었다면 한 후보자는 민간 기업 대표 출신이라는 점에서 크게 구분된다.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시장 논리를 이해하는 기업인 출신 총리이자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를 이끌 적임자라는 기대도 나온다.
강금실 전 장관이 법조계에 처음으로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고, 한명숙 전 총리가 여성 총리의 시대를 열었으며, 강경화 전 장관이 외교 분야에서 여성 전문성을 보여줬다면 한 후보자는 여성 리더십의 계보에 '기업가형 총리'라는 새로운 색채를 더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