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사랑하는 다작 감독
데뷔 이후 30년 동안 제작한 작품 수가 100편이 넘는다. 자기 영화만으로도 작은 영화제 하나는 거뜬히 채울 수 있는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지금도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에서 보내는 미이케 다카시의 흥미로운 점은 그의 작품들이 미이케 다카시라는 이름 외에는 어떤 장르나 취향으로도 쉬이 묶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1년 <신주쿠 흑사회>로 데뷔해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스릴러 영화 <오디션> <비지터Q>를 만들기도 하고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와 같은 변종 서부극부터 <이조> <13인의 자객> 같은 사무라이극, <크라우드 제로> <이겨라 승리호> <역전재판>과 같은 만화의 실사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미이케 다카시는 칸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이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가 사랑하는 감독 중 하나다. 부천영화제는 2001년 <비지터Q>를 시작으로 이듬해에 ‘미이케 다카시 특별전’을 열었고, 이후에도 그의 영화 20여 편을 국내 팬들에게 소개했다. 올해는 매드맥스 섹션에서 상영되는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과 저세상 패밀리 섹션의 <요괴대전쟁:가디언즈>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의 두 작품을 소개한다. 코믹범죄극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은 야쿠자 내부에 잠입한 비밀경찰 이야기로 B급 영화 특유의 과감하고 독특한 쾌감의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반면 <요괴대전쟁:가디언즈>는 위기에 처한 도쿄를 구하기 위한 와타나베 형제와 요괴들의 모험담이다. 설녀, 오니, 카키, 빨간 코의 텐구 등 일본 전통요괴뿐 아니라 영화 속 ‘세계요괴회담’에는 우리가 아는 온갖 요괴들이 구현되어 볼거리가 가득하다. 여섯 번째 한국을 방문한 미이케 다카시를 만났다.
-부천영화제를 여러 번 경험했다. 당신에게 부천영화제는 어떤 인상으로 남아있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권위를 중시하기보다 즐기는 곳으로 기억한다. 영화제가 오래되면 그런 부분이 변질될 수 있는데, 올해도 여전히 그런 느낌일까 고대하고 있다. 칸이나 베니스 영화제의 경우 경쟁부분이 있어서 뭔가 다른 영화와 경쟁을 한다는 구도가 있는데, 부천은 그보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안겨주는 영화제라는 생각이다. 어떤가? 여전히 그런가?
요괴는 변하는 세상에 대한 은유
-그렇다. 여전히 제작자와 장르영화 팬을 위한 영화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올해 상영되는 <요괴대전쟁:가디언즈>(2021)는 대히트를 기록한 <요괴대전쟁>(2005)을 다시 만든 작품이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전작과의 차이를 두고자 한 부분이 있나.
=요괴는 언제나 그대로고 변하는 건 인간 세상뿐이다. 어두운 방에서 촛불을 켜거나 희미한 불을 켰을 때, 그 순간 우리가 느끼는 공포심이 있잖나. 나는 요괴가 그런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도쿄만 해도 밤을 밝히는 빛이 너무 많아서 어둠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렇게 우리 세상이 변화한 것에 관한 이야기를 더하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요괴를 보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도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인간이 과거보다 똑똑해졌다고는 하지만 정작 인간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는 족속이다. 지혜라는 건 자신이 무언가를 모른다는 걸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인간은 모르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면서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세계요괴회담’을 열어 전 세계 요괴를 한 자리에 모으기도 했다. 요괴의 디자인이나 시각적인 부분에서는 시대적 변화를 감안했을 것 같다.
=요괴의 기본 모델은 존재한다. 시간이 흘렀으니 요괴가 걸치고 있는 옷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인간을 흉내 내는 식의 변화는 아니었으면 했다. 요괴의 성격에 어울리는 의상을 구현하기 위해 디자인 팀과 많이 고민했다. 평소에 같이 작업하는 스타일리스트가 아니라 그보다 스무 살 정도 어린 스타일리스트에게 새로운 감각의 옷을 구현해보자고 제안했다. 물론 스타일리스트의 개성보다 요괴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요괴대전쟁:가디언즈>의 주인공 케이는 올해 부천에서 가장 사랑받을 캐릭터가 아닐까. 테라다 코코로라는 매력적인 배우에게는 어떤 연기를 부탁했나.
=전작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카미키 류노스케는 완전히 배우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아역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테라타 코코로 역시 동일한 느낌이다. 다만 그들에게 다른 현장에서 배웠거나 어른들을 따라 한 연기는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뜸을 들이거나 호흡하는 것도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달라고 했다. 순수하게 그 배우 본연의 연기를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배우가 현장에서 자기도 모르게 익숙한 방식으로 어떤 연기를 했을 때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배우 스스로 뭔가 느꼈는지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웃음)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배우기도 했다.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은 코믹범죄극 3부작의 마지막이다. 배경은 이탈리아고 스톱 에니메이션,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형식과 문화가 혼종되어 있다. 이렇게 원작 만화를 실사화할 때는 어떤 목표를 갖나?
=원작 만화가 있는 작품을 영화화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원작을 좋아하는 팬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다 알 수도 없다. 다만 영화 만드는 과정에서 원작자와의 미팅이 몇 번 이루어지는데, 만화를 통해서 받은 인상과 원작자의 만남을 통해 얻은 인상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원작자가 우리가 완성한 영화를 보고 웃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는 걸 목표로 둔다. 그 원작자가 영화화하기를 잘했다 혹은 이 만화를 그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성공적이다.
-영화 속에서 레이지는 쉴 새 없이 수모를 당한다. 레이지 역의 이쿠타 토마는 일본의 아이돌인데, 전작에서는 전라로 차에 매달렸고 이번에는 전라로 십자가에 매달려 갈매기에게 공격당한다.
=원작에 전라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의 경우 원작을 도구로 생각해 현재 관객의 입맛에 맞게 조율하려 했다. 이를테면 이쿠타 토마가 아이돌 기획사 자니스 소속이라 전라연기는 안된다고 수정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게 전라라서 재미있다고 생각했고, 원작의 장점을 부각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배우도 직접 설득했는데 이쿠타 토마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동의했기 때문에 제작이 가능했다. 프로듀서나 투자자 입장에서는 내가 굉장히 번거로운 감독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은 곧 자기 세계의 확장
-오랫동안 5살 어린이 대상 TV프로그램을 연출해왔는데 그 와중에 <요괴대전쟁:가디언즈> <두더지의 노래 파이널>을 만들고, 최근에는 정해인, 고경표 배우와 한국에서 드라마 <커넥트> 촬영을 마쳤다. 각각 다른 정서를 가진 작품인데 당신의 세계에서는 이것들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궁금하다.
=그 사이에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일본 스릴러 영화도 만들었다. (웃음) 피가 난무하는 작품도 있고 어린이 작품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을 오래 하다 보면 점점 내 세계가 좁아진다고 느낀다. 그건 세상의 요구도 있고 나 스스로 ‘이런 감독이 되어야 겠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건 개인에게는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천영화제는 장르영화로 유명한 영화제다. 당신은 파격적인 수위의 스릴러, 공포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당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기본적으로 겁쟁이다. 혼자 방에 있으면 등 뒤에 뭔가 있는 것만 같아서 계속 뒤를 돌아볼 정도다. 특히 거울이 있는 공간에서 더 두려움을 느끼는데 내 시야 밖의 세계가 보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야 바깥에 관한 공포가 있었고 그게 늘 망상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외로움을 공포로 여기기도 하는데 나는 본래 느끼던 감각이 점점 무뎌지는 것, 내가 속해있는 세계가 점점 좁아지는 게 진정한 공포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워커홀릭인 것 같다. 영화 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영화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다채롭다. 로케이션 헌팅할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의상을 찾기 위해 패션쇼를 보기도 하고, CG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하느라 뇌 과학에 대해서 공부하기도 했다. 한국음식이라면 ‘국밥에 소주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하지만 (웃음) 영화는 한두 개로 다 되지 않는다. 그 안에도 애니메이션, 가부키 등 무수한 장르가 혼합되어 있어서 아직 영화를 통해 배우고 경험할 게 너무나 많다고 느낀다. 그래서 영화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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