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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포스트>가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의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하하호’ 시리즈를 진행합니다. ‘하하호’는 어떤 외래어든 쉬운 우리말로 바꿔주는 ‘소통 특급 번역기’입니다. 새로운 신조어나 외래어가 세대 간의 소통을 막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였다. 갑자기 ‘곰표 패딩’이 인기를 끌더니 차례로 내놓은 협업 상품이 매진 사태를 빚었다. 흰색 바탕에 곰표의 상징인 북극곰과 커다랗게 곰표가 새겨진 패딩은 마치 흰색 밀가루를 가득 담은 포대처럼 보였다. 곰표 밀가루를 익히 아는 40~50대에겐 예뻐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패딩은 당당히 20대 젊은 세대로부터의 선택을 받았다.

곰표 패딩
곰표 패딩 ⓒ4XR - 곰표

마케팅 업계는 들썩였다. 대체 곰표가 무엇을 하였길래 갑자기, 그것도 20대 사이에서 급부상한 기업이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으므로 이를 분석하려고 나선 이들도 많았다.

곰표 패딩
곰표 패딩 ⓒ4XR - 곰표

우선 ‘곰표’는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이다. 이 대한제분이 어떤 기업인가 하면, 1952년에 세워져 국내의 제분 업계를 이끌어온 밀가루의 산증인이다. CJ제일제당과 밀가루 업계를 약 25%씩 나눠 가지면서 국내 제분 업계의 1, 2위를 늘 차지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밀가루 매출로만 한해에 약 3,000억 원을 벌어들이는데, 다만 이 수익의 대부분이 기업 간 거래를 통해 발생한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곰표 밀가루를 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대형 마트에 가면 버젓이 매대에 수십 개씩 쌓여 있는 게 곰표 밀가루니까. 이는 여러 가지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전보다 소비자의 밀가루 소비량이 줄었을 수도 있고, 기업에서 만드는 밀가루 제품을 사 먹는 방식으로 소비 패턴이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다.

1950년대부터 밀가루를 판매해왔다.
1950년대부터 밀가루를 판매해왔다. ⓒ곰표 홈페이지

대한제분은 20~30대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밀가루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에 곰표라고 답한 사람이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곰표 밀가루 사 오라는 심부름 한 번 안 해본 이들이 드물 정도였던 시대는 이미 갔다는 거다.

이에 대한제분은 20-30대 소비자에게 밀가루는 ‘곰표’라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젊은 소비자들이 반응할 수 있는 색다른 마케팅의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곰표의 티셔츠와 패딩이었다.

곰표 패딩과 후드티
곰표 패딩과 후드티 ⓒ4XR - 곰표

다만 시작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4XR’이라는 의류 브랜드가 곰표의 로고를 활용한 티셔츠를 판매했다. 물론 돈을 내고 사용한 건 아니었다. 곰표는 우연히 유명 연예인이 해당 상품을 입은 기사 사진을 보고 상표권이 무단도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한다. 이때 곰표는 의류 브랜드를 신고를 하는 대신 마케팅 기회로 삼아보자고 생각했다고. 해당 티셔츠가 20대에게 인기가 있다는 점에서였다. 이에 ‘4XR’에 협업을 요청하면서 패딩까지 판매하게 되었고, 우리가 곰표를 새롭게 알게 된 시발점이 됐다.

그 이후 치약, 화장품, 팝콘 등을 판매하며 협업의 상징이 된 곰표는 ‘맥주’로 세상에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는 귀여운 북극곰이 그려진 곰표 맥주는 잠깐이지만 국내 대형 맥주 제조사 상품을 누르고 매출 1위에 등극한다.

곰표 밀맥주
곰표 밀맥주 ⓒ뉴스1 (BGF그룹 제공)
CU 편의점에서 판매중인  '곰표' 제품들
CU 편의점에서 판매중인 '곰표' 제품들 ⓒ뉴스1 (BGF그룹 제공)

편의점 CU에서만 판매하고 있는 곰표의 밀맥주는 맥주 제조사인 세븐브로이와 협업하여 만든 수제 맥주다. 출시 3일 만에 첫 생산 물량 10만 개를 완판하고, 일주일 새 30만 개를 판매했다. 수제 맥주라는 특성상 만들 수 있는 물량이 정해져 있다 보니 희소성이 더해져 곰표 맥주 찾으러 편의점 탐방을 나서는 이들까지 양산해냈다. 

이를 본 기업들은 앞다투어 협업에 열을 올렸다. 바둑알 초콜릿, 유성 매직 음료수, 우유병 보디 워시, 딱풀 사탕 등이 연달아 출시됐다. 하지만 이런 제품을 본 소비자들은 곰표 맥주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지난 15일 부산 홈플러스 아시아드점에 ‘서울우유 보디 워시’ 제품이 실제 우유 판매대 옆에 배치돼있다.
지난 15일 부산 홈플러스 아시아드점에 ‘서울우유 보디 워시’ 제품이 실제 우유 판매대 옆에 배치돼있다. ⓒ한겨레 (트위터 갈무리)
CU가 말표산업과 협업해 만든 구두약 초콜릿과 GS25가 모나미와 협업해 만든 매직 탄산음료
CU가 말표산업과 협업해 만든 구두약 초콜릿과 GS25가 모나미와 협업해 만든 매직 탄산음료 ⓒ한겨레

해당 제품이 생활 화학제품과 포장이 유사한 탓에 제품을 오인하고 먹거나 사용할 염려가 크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마치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불량식품 같던 해당 제품들은 안전사고 위험에 대한 지적을 받고 결국 매대에서 퇴출당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건 소비의 흐름을 이끄는 20~30대가 제품을 구매할 때 ‘가성비‘나 ‘실용성‘이 아닌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뜻에서 나온 ‘펀슈머’가 마케팅의 화두로 떠오르면서부터다. 펀슈머란 펀(fun·재미)과 컨슈머(consumer·소비자)를 합친 신조어다. 물건을 구매할 때 재미있는 상품을 선호하거나, 소비 과정에서 실용성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의미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펀슈머를 잡겠다는 목표 아래 협업을 하며 재미에 방점을 찍었다. 말 그대로 회의 시간에 펀슈머를 잡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의제를 던지면서 어떤 기업과 협업을 해야 재미가 더 있을지, 더 소비자의 눈에 띌지를 고민했을 거다. 

애경산업-곰표 협업 치약
애경산업-곰표 협업 치약 ⓒ뉴스1

하지만 곰표의 사례를 보면, 절대로 밀가루 회사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옛날엔 얼굴을 하얗게 분칠하기 위해 밀가루를 바른 적이 있었다는 점, 밀가루처럼 하얀 얼굴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여성용 팩트 쿠션을 만들었고, 이 외에 핸드크림과 자외선 차단제에도 곰표가 붙었다. 하얀 이를 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약도 나왔다. 밀맥주 또한 보리와 밀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밀가루와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으며, 뒤이어 곰표가 출시한 막걸리 또한 밀 막걸리라는 점에서 자사 제품과의 연관성을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다.

아마 다른 기업들은 ‘펀’에 초점이 꽂힌 나머지 이들이 소비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 아닐까.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원은 펀슈머 대신 ‘오락적 소비자‘로 바꿔쓰자는 제안을 했다. 마치 20~30대 전체가 재미와 즐거움에 도치돼 불합리하고 위험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펀슈머라는 불분명한 마케팅 용어보다는 ‘오락적 소비자’라고 명확히 쓰는 것이 어떨까? 재미를 좀 더 선택하는 이들이건 실용성을 선택하는 사람들이건 모두다 소비자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펀슈머’ →  ‘오락적 소비자’

물건을 구매할 때 재미있는 상품을 선호하거나, 소비 과정에서 실용성보다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가리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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