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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이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의 실적 호조를 타고 해외 조선소 확장이라는 전략에 힘을 붙인다.

HD한국조선해양은 선가(선박 가격) 상승기에 수주한 일감이 본격적으로 매출에 반영되면서 분기마다 매출 8조 원, 영업이익 1조 원 이상의 실적 성과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이 해외 야드(사업장)를 확대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HD한국조선해양 분기 실적 기준 '영업이익 1조'로 높아졌다, 정기선 필리핀서 '해외 조선소 성공' 업계 숙제도 풀까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가운데 파란옷)이 3월5일 필리핀 수빅만에 위치한 HD현대필리핀조선을 방문해 현장 직원들과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HD현대

정 회장의 글로벌 생산거점 다변화 전략은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한 필리핀 조선소(HD현대필리핀조선)에서 비롯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조선사들이 해외 야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온 상황에서 유일하게 '해외 진출 성공 방정식'을 풀었던 HD현대그룹을 향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일 증권업계의 분석을 종합하면 HD한국조선해양의 분기 실적 눈높이가 한층 높아진 것으로 파악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1분기 연결기준 매출 7조9859억 원, 영업이익 1조1773억 원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분기보다 매출은 19%, 영업이익은 37% 늘어나는 우수한 실적이다.

외형을 보면 지난해 4분기 매출 8조1516억 원으로 분기 기준으로는 처음 8조 원을 넘어선 뒤 소폭 하락한 추정치다. 다만 정 회장은 앞으로 분기마다 8조 원 이상의 매출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1일 '기업가치 제고계획 이행현황'을 소개하면서 2027년 매출 목표를 36조 원으로 수정했다. 2024년 12월 기업가치 제고계획 발표 당시 세웠던 34조 원에서 2조 원 높여 잡은 것이다.

수익성 측면에서는 '분기 영업이익 1조 원'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3분기 1조538억 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분기 기준 영업이익 1조 원을 달성했는데 앞으로는 더 나은 수익성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올해와 내년 한국조선해양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5조4천억 원과 6조5천억 원이다. 분기별로 1조 원을 훌쩍 넘긴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는 예상이 깔려있는 셈이다.

HD한국조선해양이 역대급 실적을 이어갈 수 있는 데는 HD현대중공업, HD현대삼호 등 주력 자회사들의 실적 호조가 있다. 이 자회사들은 스마트기술 도입을 통한 생산효율 증대와 함께 높아진 선가로 수주한 물량들의 실적 반영 비중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자공시시스템 기준 HD현대중공업 공시를 통해 LNG운반선 1척당 수주 가격을 분석해보면 본격적으로 선가가 오르기 이전인 2022년 8월 2억1490만 달러(약 2804억 원)에서 가장 최근인 올해 3월 2억5386만 달러(3718억 원)으로 달러화 기준 18% 상승했다.

상장사인 HD현대중공업의 1분기 실적 추산치는 매출 5조6157억 원, 영업이익 777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47%, 79% 뛴 수치다. 이한결 키움증권 연구원은 "HD한국조선해양은 핵심 자회사들의 실적 개선이 지속되면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상선 부문에서 고선가 선박의 비중 확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바라봤다.

정 회장은 실적 호조를 든든한 뒷배 삼아 다양한 성장전략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해외 사업의 가속화'라는 핵심 과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9월 해외자회사 관리를 전담하기 위한 계열사 HD현대아시아홀딩스를 설립한 뒤 그 아래 HD현대필리핀조선(HHIP)과 HD현대베트남조선(HVS)을 둬 해외 야드 확장에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HD현대아시아홀딩스의 지분은 HD한국조선해양이 60%, HD현대중공업이 40%를 들고 있다.
 
특히 2019년부터 멈춰있었던 과거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일부 인수해 새출발시킨 HD현대필리핀조선에서 해외 확장 전략이 가시화하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2024년 5월 수빅조선소 소유주인 미국의 사모펀드 세베루스캐피탈과 필리핀 조선소 일부 부지에 관한 임차계약을 맺은 뒤 HD현대필리핀조선을 출범했다. 이어 지난해 9월부터는 HD현대필리핀조선의 첫 건조 선박인 석유화학제품운반선(PC선) 건조를 위한 강재절단식을 연 뒤 본격적으로 가동에 돌입했다.

정 회장은 국내 조선업계의 오랜 숙제로 여겨지는 해외 조선소의 성공적 가동이라는 과제를 HD현대필리핀조선을 통해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과거 수빅조선소는 2006년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이 신설한 뒤 2만 명이 근무하는 세계 4대 조선소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2016년부터 조선업황 악화에 영향을 피하지 못했고 2019년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수빅조선소를 포함해 해외 조선소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업황 불황을 이겨낼 만한 인력 수급체계를 갖추지 못한 점, 리스크가 높은 무리한 확장 등이 꼽힌다. 결국 인적 역량이 뒤따라주지 못해 품질 하락, 납기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덩치만 키웠던 것이 불황을 이겨내지 못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조선소에서는 국내만큼 숙련된 근로자를 찾기도, 육성하기도 쉽지 않다"며 "조선업은 여전히 인간에 의존하는 정도가 절대적인데 해외 야드에서는 이를 극복하기가 만만치 않다"고 평가했다.

국내 조선업계에서 드물게 해외 조선소 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을 HD현대그룹이 HD현대베트남조선에서 지니고 있다는 점은 정 회장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1996년 설립된 HD현대베트남조선은 2023년 누적 수주 200척을 넘길 만큼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설립 초기부터 국내 엔지니어들을 적극적으로 파견해 현지 근로자들의 경쟁력을 높인 점, PC선 중심의 건조라는 '선택과 집중'은 HD현대베트남조선의 성공 요인으로 평가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HD현대필리핀조선의 운용인력 규모를 적정선에서 유지하면서 PC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중심의 건조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HD현대베트남조선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기자재 공급망을 공동으로 활용하고 인력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변용진 iM증권 연구원은 "한국 조선사들은 건조능력 확장 및 시장 개척 등을 위해 해외 조선소를 여러 차례 인수 또는 건설해 가동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며 "유일한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HD현대베트남조선이고 여기에서 확인한 HD현대그룹의 관리 능력은 HD현대필리핀조선 가동에서 긍정적 요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조선소 재가동은 지난해 9월 강재절단식에 필리핀 대통령이 참석할 만큼 현지에서도 주목도가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형민혁 필리핀 마닐라무역관은 지난해 9월 HD현대필리핀조선 가동 직후 보고서를 통해 "필리핀 수빅조선소 재가동은 대형 상선 건조산업의 단계적 복원을 시사한다"며 "야드 가동 안정화, 선급 승인 등에 따라 일정 변동이 발생할 수 있어 리드타임(선박 건조시간) 관리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지난달 5일 우리 정부의 필리핀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현지를 방문한 뒤 HD현대필리핀조선을 방문해 직원 기숙사 신축 현장과 야드를 둘러보며 "임직원들이 불편이 없도록 더욱 각별히 챙기겠다"며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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