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해부터 그려온 ‘큰 그림’이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유통사업에 AI를 적용하겠다는 정 회장의 포부가 글로벌 AI 기업들과 협력을 통해 점점 정교한 청사진으로 나타나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최대 규모의 AI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 위해 정 회장이 선택한 글로벌 동맹인 리플렉션AI와 협력 영역 역시 점점 넓어지고 있다.
신세계그룹과 리플렉션 AI가 지난 3월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을 위해 진행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사진은 미샤 리프킨 리플렉션 AI 대표이사,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신세계그룹
17일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두 회사는 데이터센터 구축을 넘어 ‘리테일AI’ 소프트웨어 도입까지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AI를 적용할 영역은 상품 소싱부터 발주, 가격 책정, 물류, 재고관리, 고객관리에 이르는 6개 분야로, 사실상 유통기업 운영의 모든 과정을 아우른다.
리플렉션 AI는 “두 회사는 미래 유통업에 최적화한 AI 기반 리테일 사업 모델을 구현해 생산성을 높이고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신세계그룹은 사업 전반에 걸친 ‘AI 전환’을 선점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속도감은 파트너 전략에서도 드러난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결정으로 오픈AI와의 협업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 6일 웨스틴조선서울에서 ‘AI 커머스 사업 협력’ 업무협약(MOU)을 맺은 지 불과 10여 일 만이다.
AI구축 초기에는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는 리플렉션AI와, 생성형AI 기반 소프트웨어 도입은 오픈AI와 각각 협력하는 ‘투 트랙 전략’을 검토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논의가 구체화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분리하기보다, 데이터센터 구축부터 리테일 AI 소프트웨어까지 일괄 구현이 가능한 리플렉션 AI 중심으로 방향을 정리했다.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이번 결정의 핵심 기준 역시 ‘속도감’이었다.
정 회장이 이처럼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커머스 플랫폼 사업의 구조적 특성이 자리한다. 플랫폼 경쟁에서는 고객과 데이터를 한 번 확보하면 쉽게 이탈하지 않도록 묶어두는 ‘락인’ 전략이 핵심으로 작용한다.
특히 이 경쟁에서는 얼마나 정교하게 구축하느냐보다, 이를 얼마나 빠르게 구현해 고객과 데이터를 선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초기 학습 데이터와 이용자 행동 패턴이 그대로 경쟁력으로 축적되며, 그 뒤 격차를 벌리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리테일AI는 이마트에 가장 먼저 도입하기로 했다. 가장 많은 상품을 직접 다루고, 고객 접점이 가장 넓다는 점에서 실험과 검증에 최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마트 실무그룹은 이달 말 방한하는 리플렉션AI 관계자들과 실행 방안 논의에 착수할 계획이다. 미샤 라스킨 대표를 비롯한 주요 임직원들이 방한해 워크숍을 진행하고, 데이터센터 구축 및 운영 모델도 한층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유통과 AI를 접목하겠다는 청사진을 실현하는 방법론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정 회장은 현지시각으로 지난해 12월12일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성탄절 만찬을 가진 데 이어, 트럼프 주니어와 실리콘밸리·할리우드 주요 인사들을 잇달아 만났다.
같은 달 16일에는 플로리다 마더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주니어가 참여하고 있는 투자회사 ‘1789캐피탈’의 경영진과 회동했고, 이 자리에는 창업자 오미드 말릭과 크리스토퍼 버스커크 등이 함께했다.
뒤이어 플로리다에서는 미샤 라스킨 리플렉션AI 창업자를 만났고, 18일에는 LA로 이동해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대표와도 회동했다.
이러한 일련의 미국 행보는 단순한 네트워킹에 그치지 않았다. 3달여 뒤인 지난달, 신세계그룹은 리플렉션AI와 손잡고 국내 최대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리플렉션 AI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AI를 그룹 미래 비전의 한 축으로 삼고, 기존 사업 혁신을 기민하게 추진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객 만족을 동시에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