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을 비롯한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시설 확보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및 약가 인하 정책에 대응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메릴랜드주 락빌에 있는 휴먼지놈사이언스(HGS, Human Genome Sciences)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인수 계약을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체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내 첫 생산거점을 확보하게 됐다.
인수 주체는 미국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아메리카이며, 인수 금액은 2억8000만 달러(약 4136억 원)다. 이 회사는 2026년 1분기 안에 계약에 따른 자산 인수 절차를 완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락빌 생산시설은 미국 메릴랜드주 바이오 클러스터 중심지에 자리 잡은 총 6만 리터 규모의 원료의약품(DS) 생산공장으로, 두 개의 제조동으로 구성돼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생산시설을 인수하면서 기존 생산 계약을 승계함으로써 대규모 위탁생산(CMO)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됐다. 중장기 수요와 가동 상황을 고려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추가 투자도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 GC녹십자와 셀트리온도 올해 미국 생산시설 구축
삼성바이오로직스 외에도 최근 미국 생산시설을 확보하려는 국내 바이오 업체들의 움직임이 뚜렷하다. GC녹십자와 셀트리온이 대표적이다.
GC녹십자는 지난 8월 미국 자회사 메이드사이언티픽(Made Scientific)의 신규 생산시설을 미국 뉴저지주 프린스턴에 열었다. 연면적 5570㎡ 규모의 신규 GMP 제조시설이다.
이를 통해 임상부터 상업화까지 전 주기에 걸친 세포치료제 생산 역량을 확보했다는 것이 회사 쪽의 설명이다.
셀트리온은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인수한다. 이를 위해 지난 11일 미국 법인인 셀트리온USA에 대한 7824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인수절차를 올해 마무리하고, 내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증자를 진행한다.
셀트리온은 이 생산시설을 기반으로 미국 내 위탁생산(CMO)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밖에 롯데바이오로직스도 2022년 미국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으로부터 인수한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 공장(시러큐스바이오캠퍼스)을 위탁개발생산(CDMO)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또 SK그룹의 CDMO 계열사 SK팜테코도 2023년 미국 세포·유전자 치료제 CDMO 기업인 CBM(The Center for Breakthrough Medicines)을 인수했다.
◆ 트럼프 정부 정책 대응과 리스크 해소 목적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미국 생산거점 확보에 적극적인 이유는 △공급망 리스크 해소 및 경쟁력 강화 △관세 정책 대응 △약가 인하 정책 대응 등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지속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각종 지정학적 긴장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 주요 배경으로 거론된다. 미국 내 생산기지는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 고객과의 거래 확대, 현지 기업과의 협력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 역시 주요 배경이다. 애초 트럼프 정부는 한국산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 부과를 예고했고,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후 11월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를 통해 한국 의약품에 최혜국 대우 세율(최대 15%, 제네릭은 무관세)이 적용됐지만, 이 숫자 역시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도 한 요인이다. 미국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들에게 약가 인하를 지속해서 압박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도 현지 생산을 통해 물류비용 등을 절감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전략이 중요해졌다.
이와 관련 미국 정부는 19일(현지시간) 9개 글로벌 제약사와 의약품 가격 인하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협정에 참여한 제약사는 암젠, 베링거인겔하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제넨텍, 길리어드 사이언스, GSK, 머크, 노바티스, 사노피 등이다. 앞서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EMD 세로노, 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 등 5개 제약사도 협정을 맺은 바 있어, 참여 제약사는 총 14곳이 됐다.
협정은 미국 공공의료 영역에 최혜국 대우 수준의 가격으로 의약품을 판매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약사들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의 가격을 주요 8개 선진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덴마크·스위스) 가운데 두 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책정하는 대신 미국 정부는 제약사들에게 △의약품 관세 면제 △미국 식품의약국(FDA) 우선심사 바우처 제공 △정부 직영 의약품 플랫폼 입점 허용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