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무관한 드라마 '런 온' 캡쳐본/청사초롱은 달빛기행의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한발짝 물러나 이어지는 청사초롱 행렬을 보면 무척이나 귀엽습니다. ⓒJTBC/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부모님의 휴대전화 사진첩에 가득한 꽃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산책을 좋아하는 엄마의 사진첩에는 늘 풍경 사진이 가득합니다. 같이 여행을 가면 사진기자인 저보다 훨씬 많이 사진을 찍으시니까요. 예전에는 그런 엄마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포토 굿즈를 이어나가면서 그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창덕궁 달빛기행은 돈화문에서 시작됩니다. 전문해설사를 만나 인사를 하고 이어폰과 리시버를 받습니다. 한 쪽 귀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금천교를 지나 인정전에 도착합니다. 왼쪽엔 빌딩, 오른쪽엔 불 켜진 인정전을 보면 와∼소리가 납니다.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꿈 속 밤 산책이 시작됩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번엔 가을밤 궁궐 산책을 준비했습니다. ‘창덕궁 달빛기행’은 예약 때마다 ‘광클’이 필요한 국가유산진흥원의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16년째 이어지고 있는 달빛기행은 일반 관람객뿐만 아니라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초청하기도 합니다. 달빛 아래 청사초롱을 들고 전문해설사와 함께 궁궐 곳곳을 관람하며, 각 전각에 대한 해설과 전통예술공연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고 아무도 없는 창덕궁 안을 거닌다는 특별함도 느낄 수 있습니다.
청사초롱은 달빛기행의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한발짝 물러나 이어지는 청사초롱 행렬을 보면 무척이나 귀엽습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아쉽게도 제가 창덕궁을 찾은 날은 구름이 많이 껴 달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주 ‘슈퍼문’이 지나간 뒤라 궁궐 위로 뜬 고운 손톱 달을 기대했는데 아쉬웠습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그렇지만 기대하지 못한 아름다움도 만났습니다. 그건 바로 연못에 비친 창덕궁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부용지와 애련지 위로 비치는 창덕궁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습니다. 특히 아직 연잎이 가득한 애련지의 모습은 마치 한국판 모네의 작품인가 싶었습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문해설사의 설명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입니다. 희정당에 멈춰선 천대중 해설사가 현관 단청 속 박쥐에 관해 설명합니다. 왜 그려졌는지, 무슨 의미인지까지도요.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행복도 비슷합니다.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아요. 은은하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예상치도 못한 말 한마디에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그 뒤로도 창덕궁에 대한 역사적∙문화적 해설과 함께 일상과 행복에 대한 따뜻한 해설이 이어졌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나자 아주 큰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일상 속 은은한 행복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노랗게 변해가는 은행잎, 동네 산책길에 춤추는 강아지풀,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딱 좋은 퇴근길 가을바람…. 같이 해보실래요?
짧은 가을 건강하게 보내세요.
부용지는 달빛기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힙니다. 부용지 위로 비친 불 밝힌 주합루의 모습은 장관 중 하나입니다. 밤 산책을 나온 임금님∙중전마마와 함께 사진을 찍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상량정에 도착하면 놀라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달빛기행 초반에 들리던 대금 연주가 라이브였다는 겁니다. 평소에는 상량정을 가까이서 보기 어려운데 달빛기행에서는 바로 앞까지 가서 세세하게 상량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시간 정도 이어진 달빛기행은 궁궐의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도 만날 수 있습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아쉬웠지만 후원 숲길을 따라 걷는 마지막 순서가 그 중 하나입니다. 아마 몇 주 뒤면 붉게 물들어 그 아름다움이 배가 될 겁니다.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는 가을 바람에 흔들리며 바스락 소리로 작별인사를 고합니다. 짧은 가을이 끝나기 전에 궁궐 밤 산책의 즐거움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