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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와, 역시 여행 작가는 다르네요!’ 또는 ‘루마니아? 루마니아에 볼 거 뭐 있어요?’같은 반응을 보이곤 했다. 글쎄, 돌아보면 당시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읽고 무작정 루마니아에 가고 싶어졌던 것 같다. 호러 소설 팬이자 내 의견은 항상 믿고 따라와 주는 남편도 두말없이 오케이.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7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루마니아 여행 어땠어요?’라고 묻는 이를 종종 만난다. 호기심이 잔뜩 담긴 눈을 보면 과장이라도 해야 하나 싶지만 쓸데없는 기대감을 심어주기 싫어 솔직히 대답하곤 한다. ‘유럽 다른 나라 웬만큼 다 가봤으면 한번쯤 가볼 만한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이런 나라 두고 굳이 루마니아 먼저 갈 이유는 없는 것 같아요.’라고.

브라쇼브 숙소 침실
브라쇼브 숙소 침실

크게 매력적인 여행지도 아니고 우리나라와 별다른 접점도 없는 루마니아. 그래도 신혼여행지는 누구에게나 조금은 각별하기 마련. 아주 가끔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서 루마니아 소식이 들리면 유난히 반가웠는데 최근 몇 개월 동안 지난 몇 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주 루마니아 소식을 들으면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루마니아가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București)에 피란민 지원 센터가 마련되었고 한 회사의 대표는 자신의 사업장에 간이침대를 놓아 임시 거처를 만들었다고 한다. 한 자원봉사자는 80대 우크라이나 할머니의 반려견을 임시보호 하고 있다가 할머니가 안전한 곳에 정착하자 돌려보냈다고 한다.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여행길에서 만난 루마니아 사람들이 생각났다. 감기에 좋은 차를 우편함에 넣어주는 다정함, 역에서 기어코 빵을 사들고 와 손에 들려주는 다정함, 정전 때문에 놀라 우는 아이를 위해 다 같이 노래를 불러주는 다정함. 한국어로 된 여행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건 그 다정한 사람들 덕분이었다고, 새삼 그들을 떠올렸다.

브라쇼브 숙소 침실
브라쇼브 숙소 침실

평소엔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에어비앤비 독채는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신혼여행이기도 하고 루마니아의 물가가 상당히 저렴해서 한 군데만 빼고 모두 독채 숙소를 예약했다. 처음으로 도착한 루마니아의 도시 부쿠레슈티. 숙소에 있는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모든 가전제품이 우리나라 브랜드였다. 그 익숙함에 안도했고 우리 부부가 그 회사 직원도 아닌데 괜히 뿌듯해서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겼더니, 글쎄 한달음에 숙소 앞으로 달려온 호스트. 결혼을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들고 문 앞에 서있을 줄이야. 언어학을 전공했다는 호스트는 내친 김에 루마니아어 인사말 과외까지 해줬다. 자기가 만난 동양인 중에 내가 루마니아어 발음이 제일 좋다며, ‘물쭈메스크(mulțumesc, 루마니아어로 고맙다는 뜻)’ 한마디면 너희의 루마니아 여행은 걱정 없을 거라고. 물론 앞으로 갈 도시의 여행정보를 귀띔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브라쇼브 구시가 광장
브라쇼브 구시가 광장

부쿠레슈티에서 드라큘라 성인 브란 성까지 바로 가는 방법은 없다. 뚜벅이 여행자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중심도시 브라쇼브(Braşov)까지 가서 투어를 신청해 다녀오는 게 일반적인 방법. 트란실바니아 지방이라니! 드디어 소설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는 것 같아 마음이 과하게 들떴는지 모른다. 브라쇼브로 가는 길에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 시나이아(Sinaia)에 들러 하루 쉬어가기로 했는데 날이 너무 좋아 새벽부터 새벽까지, 먹이를 구하는 다람쥐처럼 돌아다니고 말았다. 하필 그 전날 산에는 비가 왔고 기온이 평년보다 10도 이상 떨어진 것도 모른 채 그저 산이라서 좀 추운거구나, 했다. 현지인은 패딩을 꺼내 입는 날씨에 얇은 니트에 재킷만 입고 산속을 돌아다녔으니, 결혼식을 앞두고 무리해서 일을 처리하고 긴 비행과 시차까지 겪은 몸이 남아날 리가 있나. 장거리 여행이 처음인 남편이 된통 감기에 걸려버렸다. 목표인 드라큘라 성을 눈앞에 두고...

배낭을 메고 이동하는 일정을 소화하는지라 챙겨온 감기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브라쇼브에 도착해 호스트가 알려준 대로 비밀번호가 걸린 우편함을 열어 열쇠를 꺼내 무사히 체크인을 한 후 집의 모든 난방을 최대로 올려놓고 혼자서 정신없이 약국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하필 일요일. 그제야 급하게 호스트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약을 먹어도 듣지 않는데 혹시 감기약이 있으면 좀 가져다 줄 수 있냐고. 자기는 일 때문에 부쿠레슈티에 와 있는데 동생에게 부탁하겠다는 답장을 받고 작은 안도를 했다. 식탁에 엎드려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깼을 때 어슴푸레한 아침과 함께 우편함을 살펴보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체크인 할 때 열쇠만 동그마니 들어있던 우편함 안에는 두 가지 종류의 티백과 쪽지가 들어있었다.

시나이아 펠리슈 성
시나이아 펠리슈 성

‘루마니아에서는 감기에 걸리면 이 두 가지 차를 마십니다. 여러 가지 향신료가 블렌딩 된 차입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저희 가족이 자주 가는 약국이 있습니다. 안드레이의 집에 숙박하고 있다고 하면 잘해줄 거예요. 영업시간과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결국 브라쇼브에 머무는 내내 앓느라 드라큘라 성 근처에는 가지도 못했다. 속상한 마음에 드라큘라 마그넷, 티셔츠, 노트 등 기념품을 잔뜩 사들고 와버렸지만 꺼내 본 적이 언제인지. 잊고 있던 신혼여행의 추억을 전쟁이라는 반갑지 않은 뉴스를 통해 다시 떠올릴 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다정함과 친절이 지금 절박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겠지. 바람이 매서운 계절이 되었다. 우리나라보다 한참 북쪽에 위치한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의 겨울이 너무 춥지 않기를, 멀리 떨어져 있으나 이어진 땅에 살고 있는 한사람으로서 오늘도 다만 그들의 안녕을 빈다.

여행작가 양미석 : 한 번에 한 나라, 한 도시만 느릿느릿 둘러보며 30년 일정으로 세계 일주 중. 사랑하는 곳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여행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은 없지만, 막상 여행 작가가 되고 보니 이젠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책 작업을 할 때 가장 즐겁고 자신이 쓴 책을 읽고 여행을 다녀온 독자를 만날 때 가장 기쁘다. 
여행작가 양미석 : 한 번에 한 나라, 한 도시만 느릿느릿 둘러보며 30년 일정으로 세계 일주 중. 사랑하는 곳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여행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은 없지만, 막상 여행 작가가 되고 보니 이젠 다른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책 작업을 할 때 가장 즐겁고 자신이 쓴 책을 읽고 여행을 다녀온 독자를 만날 때 가장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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