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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분노 : 대만 지방선거 결과를 보며
ⓒTyrone Siu / Reuters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분노 : 대만 지방선거 결과를 보며
ⓒhuffpost

2016년 1월 16일, 대만은 국회의원 및 총통 선거에서 대만독립운동을 추구하는 민진당에 총 113석 중 3분의 2에 가까운 74석(친여당계 정당인 시대역량 5석 포함)을 몰아주고 총통으로는 민진당의 차이 잉원(蔡英文)을 선택했다.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기회가 생겼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이 당시에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11월 24일 대만 지방선거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겨우 2년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대만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4년 전 지방선거에서는 22개 지방자치단체장 중 당시 야당이던 민진당이 13개, 국민당이 6개 지역을 차지했으나 이번에는 야당인 국민당이 15개, 민진당 6개로 결과가 역전됐다.

다양한 분석이 잇따르지만 그 가운데서도 청년실업 문제, 중국 관계 악화, 그리고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민투표’가 민진당의 패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민투표는 ‘7년 후 핵발전 지속 여부’ ‘동성결혼 허용 여부’ ‘올림픽 참가 시 대만 국호 사용 여부’ 등 10가지 사안을 놓고 치러졌다. 국민투표는 통과 후에도 의회에서 입법 심의를 거치기 때문에 강제력은 없다. 하지만 ‘즉각적인 탈원전이 아니라 필요하면 계속 핵발전을 하자’는 (한국의 결정과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고, 동성결혼 허용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는데 이는 민진당에 불리한 여론으로 작용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대만이라는 이름으로 올림픽 참가가 불가능하다고 통보한 것도 민진당에는 악재였다. 다수 한국언론은 지방선거가 아니라 국민투표에 초점을 찍어 단편적인 시각으로 이번 선거결과를 바라보는데, 선거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진지한 검토는 부족해 보인다.

민진당의 패인은 무리한 연금개혁이다

민진당 패배의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민진당의 표밭인 남부, 특히 가오슝에서 이른바 ‘한류’라고 불리는 돌풍을 일으킨 국민당 한 궈위(韓國瑜)의 성공은 농산품의 중국 수출이 막히면서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 것과 관련이 깊다. 농민들이 국민당을 지지하게 된 데는 중국정부의 경제적 압박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부적 요인보다 더 주요한 민진당의 패인은 바로 2018년 7월 1일 실시된 군인·경찰·교사·공무원에 대한 연금개혁이다. 당장 이 법률 개정의 영향을 받는 기존 퇴직 공무원은 33만 3천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진당은 유독 국민당 지지자가 많은 군인·경찰·교사·공무원의 연금 수령액이 너무 많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정치 운동화해왔다. 그리고 자신들이 국회의 절대 다수당이 된 상황에서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밀어붙여 위헌 논란 및 저항을 야기했다. 잡지 『위엔지엔(遠見)』의 심층보도에 따르면 당장 63만 9421명에 달하는 현직 군인·경찰·교사·공무원의 조기퇴직 신청율이 2015년보다 18.48%나 줄어들었다. 조기퇴직자가 줄면서 30세 이하 고등학교 교사는 7632에서 4456명으로 감소했다. 퇴직이 늦어지면서 신규 임용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긴 것이다. 또한 연금 수령액이 임금의 약 65% 수준으로 줄었는데, 심지어 기존 연금수령자까지 매년 수령액이 줄어서 결국 신규 퇴직자와 같은 수준인 65% 정도로 조정될 전망이다. 교직 퇴직자의 경우 최대 65,482NT$(약 237만원)의 연금이 예상됐으나 조정 후에는 43,655NT$(약 158만원)로 감소한다. 공무원 복지가 이렇게 크게 후퇴하자 당장 공무원시험 응시자가 2012년 16만 1107명에서 2018년에는 8만 4684명으로 줄어들었다. 한평생을 대만을 위해 봉사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퇴직 공무원들은 자조 섞인 목소리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한다.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패배한 것을 두고, 민진당의 비판적 지지자인 언론인 양 자오(楊照)는“준비 없는 오만의 결과”라며“문제를 제기하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민진당과 시종일관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 정부를 비판한다. 또한 친정부 인사를 내려보내기 위해 아직까지 총장 자리가 공석인 국립대만대학(한국의 서울대학교에 해당)을 상징적인 상황으로 제시한다.

선거결과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 대만은 어디로

이러한 민진당 지지자의 내부 비판과는 달리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국민당 소속 당선자들은 앞다투어 ‘92공식’(양안합의에 대한 국민당의 입장으로 ‘하나의 중국, 두개의 해석’을 말한다. 민진당은 92공식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중국정부에서도 11월 28일 오전 이번 선거의 승리로 “양안의 정치적 기초인 92공식(중국은 ‘하나의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입장이다)으로 돌아와 양안관계의 평화적 과실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국의 태도도 명료한 것으로 보인다. 타이베이 주대만미국대표부의 전 대표 스티븐 영(Stephen Young)과 윌리엄 스탠튼(William Stanton)이 12월 2일에 “이번 선거결과는 대만이 중국과의 관계변화를 바랐다기보다는 경제문제에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것”임을 상기시킨 것도 이번 선거결과를 지나치게 친중국 혹은 통일과 연계시키는 것에 대해 주의를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선거결과에 대한 해석과 미래에 대한 입장이 각기 다른 대만의 미래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필자는 「정권교체를 선택한 대만, 그 미래는?」(창비주간논평2016.1.27)에서 대만이 통일이나 독립 같은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불공정한 조세, 격화되는 빈부격차 해소처럼 자신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대만 시민은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거기에 집중하면서 집권여당에 정당한 의사표현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민진당은 개헌까지 가능한 국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내세운 대만독립은 명시적으로 첫발도 떼지 못했으며, 과감하게 주도한 연금개혁은 커다란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대만독립에 힘쓰지 않는 현 정부에 실망한 일부 민진당 지지자들과 민진당 내 주요계파에서는 더욱 급진적인 현 행정원장(국무총리) 라이 칭더(賴清德)가 2020년 총통선거에 나서야 한다고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대만 선거결과를 어떻게 봐야 하나

지금 겨우 27% 남짓한 지지도인 차이 잉원 총통은 청년들의 저임금 취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보다 임금수준은 낮지만 부동산 가격은 더 비싼 대만의 젊은이들에게 ‘내 집 마련’의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또한 연금수령자의 불만, 향후 은퇴를 준비하는 많은 공무원과 노동자들의 불안에 대해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을까? 법인세와 개인소득세 차이를 통해 본 대만은 기업은 세금을 적게 내고 개인은 세금을 많이 내는 전형적인 친기업 중심 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하기 위한 조세개혁은 가능할까? 중국의 압력이 선거결과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지만, 이번 선거결과를 가장 크게 좌우한 것은 바로 대만을 지켜야 할 군인·경찰·교사·공무원이, 그리고 미래의 희망이어야 할 청년들이 투표를 통해 보여준 좌절과 분노였다. 대만에서 빈부격차는 꾸준히 벌어져왔고, 조세는 불공정하며, 건강하고 새로운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 결국 민진당은 이러한 일들에 대한 문제제기만 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다.

연금개혁과 청년실업 문제, 불공정한 조세 문제, 중국과의 협력/갈등 같은 비슷한 문제를 마주한 한국이 대만의 현실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의 것을 빼앗아야만 하는 제로섬게임에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게임으로의 전환은 공정한 규칙에 대한 합의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공자는 한마디 말이 나라를 세우고 한마디 말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一言興邦,一言喪邦)고 했는데, 국립대만대학의 총장을 정권이 좌지우지하려던 민진당정부의 안하무인 언사들은 이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지방선거 패배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된다. 국민당과 민진당의 끊임없는 정치투쟁에 지친 대만인들이 원한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정부였던 것이다. 힘겹게 살아가는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분노의 표현은 결국 투표였으며, 이 투표를 통해 시민들은 언제든 정권을 바꿀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언제나 겸허한 자세로 자신의 책임과 역할에 충실하면서 공정한 사회의 기초를 만들어가는 것, 한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것처럼 떠들어대는 말들의 잔치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불공정을 고쳐나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느린 길이지만 가장 올바른 길이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견제의 수단은 결국 투표일 것이다.

* 창비주간논평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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