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의 뉴욕 여행을 계획하면서 반드시 뉴욕에서 챙겨오리라 다짐했던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바로 트럼프 모자.
트럼프의 유세마다 수백 명의 지지자가 이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조롱하는 재미에 모자를 사들인다. 트럼프 모자를 주문했다는 브랜든 마틴이라는 민주당원은 "트럼프는 마케팅의 천재다.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모자에 새겨진 슬로건을 인지하게 만든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조선일보 2015년 9월 23일)
때는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 클린턴을 격파하고 대선에서 승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12월 초였다. 틀림없이 어디서나 트럼프 모자를 팔고 있을 테지.
저 이민자는 해로운 이민자다위대한 영도자들의 제스처는 다 닮나 보다
그래도 기왕 뉴욕까지 왔는데 '메이드 인 그레이트 아메리카' 정품을 사줘야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뉴욕에 당도한 다음날 바로 트럼프타워로 향했다.
트럼프타워의 정문 쪽 보도는 아예 뉴욕경찰들이 통행을 제한하고 있었다. 평소 때라면 이렇게 경비가 삼엄한 곳을 굳이 비집고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나 트럼프 모자에 대한 나의 열망은 충분히 강했다.
경찰은 바로 손짓으로 나를 제지하더니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보도를 지나갈 수 없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트럼프타워에 가려는 건데 그것도 안되느냐고 물으니 그제서야 지나게 해준다.
미국의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는 선거 캠페인 가이드에서 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만일 선거 캠프가 5달러를 주고 산 티셔츠를 기부자가 20달러를 주고 구입했다면 기부자는 20달러를 기부한 것이다."
아, 그럼 시민권자인 친구에게 돈 주고 사달라고 하면 되겠네? 연방선관위는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 시민권자가 외국 국민이 미국 정치인에게 기부를 하는 데 매개체가 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기 때문.
트럼프타워의 로비 1층. 사진 하단에 보이는 트럼프타워의 이니셜 TT가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기념품점을 나가기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점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트럼프 모자를 살 수 있는 다른 곳은 정녕 없단 말인가. 점원은 차이나타운 같은 데를 찾아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며칠 후 나는 차이나타운을 들러 트럼프 모자를 살펴보았지만 이미 정품을 본 나의 눈은 중국제 짝퉁을 같은 '트럼프 모자'로 인지하기를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