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에 설치된 은빛 동상이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서서히 흘러내리자 그 아래 숨겨져 있던 섬뜩한 해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상의 주인공은 미국 플로리다주 론 디샌티스 주지사다.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대응에 소극적인 그의 행보를 비판하기 위해 마련된 설치미술 작품이었다.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15일(현지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주도 탤러해시에 선보인 설치미술 작품. 기후변화 대응 비영리단체 350액션과 아트 컬렉티브 언커먼, 제작사 미싱 피시스가 공동 작업을 펼쳤다. ⓒ350Action
미국 플로리다주 주도 탤러해시에서 13일(현지시각) 디샌티스 주지사의 실물 크기 동상이 공개된 직후 관중들 앞에서 얼굴이 녹아내리는 퍼포먼스가 펼쳐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9일 보도했다.
동상은 은빛 금속인 '갈륨(gallium)'으로 제작됐다. 갈륨은 섭씨 29.8도에서 녹기 시작하는 금속이다. 그 녹는점은 탤러해시에서 여름철 흔히 기록되는 최고기온보다 낮다. 기후변화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도록 자연의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작품 이름은 'DENIAL(부정)'이다. 기후변화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법칙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동상은 환경단체 350액션과 광고회사 언커먼 등이 함께 제작했다.
350액션은 15일 보도자료를 통해 "디샌티스의 재임 기간 상당 부분을 특징지었던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동안, 'DENIAL' 동상은 끝내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화당 소속인 디샌티스 주지사는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 감축 등을 위한 기후 정책을 '급진적인 기후 의제'라고 비판해 왔다. 지방정부가 특정 에너지원의 사용을 제한하는 규제를 시행하지 못하도록 제약했으며, 기후변화 대응을 주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어냈다.
특히 2024년에는 플로리다주 법률의 여러 조항에서 '기후변화'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HB 1645)에 서명했다. 해당 법안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기존 정책도 일부 폐지했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당시 이를 두고 급진적인 환경주의자들의 의제를 거부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번 작품을 제작한 350액션은 바로 이 법안을 겨냥했다고 설명했다. 홍수와 폭풍, 폭염 등 기후 재난에 대응해야 하는 플로리다주에서 정작 기후변화라는 용어를 법률에서 지워버린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이번 퍼포먼스는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진행됐다. 350액션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서약에 시민들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350액션의 캠페인 매니저 캔디스 포틴은 보도자료에서 "일부 선거 출마자들은 여전히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시민들이 원하는 과감한 기후 대응 정책마저 외면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투표를 통해 그들을 거부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디샌티스 주지사는 8년간의 재임을 마치고 임기 제한에 따라 2027년 1월 퇴임한다. 그러나 이번 작품이 겨냥한 것은 디샌티스 주지사 한 사람만이 아니다. 350액션은 기후변화의 현실을 부정하고 대응을 외면하는 정치인들 전반에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법률에서 '기후변화'라는 단어는 지울 수 있어도, 기후변화의 현실까지 지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