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으로 원유 운송비가 급등하면서 아시아와 유럽 정유업체들이 석유제품 가격 상승에도 수익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가격이 올랐지만, 유조선 운임이 훨씬 빠르게 상승하면서 정유업체들이 실제로 원유를 들여오는 데 드는 비용도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와 유럽 정유업체들은 비싼 운송비를 감수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원유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반면 북미에서 원유를 확보할 수 있는 미국 정유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마진을 유지하고 있다.
원유 조달 여건에 따라 지역별 정유업체들의 수익성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부 업체가 정제 처리량을 줄일 경우 국제 석유제품 공급 부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6년 10월17일 프랑스 마르세유 인근 석유 허브인 포스쉬르메르 인근 해역을 유조선이 항해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연합뉴스
닛케이아시아는 20일 "아시아와 유럽의 정유시설들은 원유 운송비가 급등하면서 석유제품 가격이 상승했음에도 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유업체들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급등한 유조선 운임이다. 일반적으로 원유 가격보다 석유제품 가격이 더 많이 오르면 정제마진이 개선된다. 하지만 원유 자체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하더라도 원유를 들여오는 데 드는 운송비가 크게 늘어나면 조달 비용이 증가해 수익성은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
올해 3분기에는 중동 지역의 석유제품 공급 차질로 경유와 항공유 등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유업체들의 마진이 한때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9월 이후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유조선 운임이 급등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에 따르면 초대형 원유운반선의 운임은 최근 중동~아시아, 중동~유럽, 아프리카~유럽 노선에서 배럴당 20~40달러(약 2만7천~5만3천 원)에 달했다. 평소보다 10배 넘게 비싸진 수준이다.
이에 따라 유럽 정유 마진의 기준 지표인 로테르담 정제마진은 10월5일 한때 배럴당 -10.95달러(약 -1만5천 원)까지 떨어졌다. 아시아의 기준 지표인 싱가포르 정제마진도 9월10일 배럴당 -4달러(약 -5천 원) 아래로 내려갔다.
아시아 정유업체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 정유업체들은 원유 수입에서 중동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아시아 정유업체들은 중동 이외 지역으로 원유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있지만, 운송 거리가 길어지는 데다 국제 유조선 운임까지 상승해 비용 부담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반면 미국 정유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송유관 등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어 국제 유조선 운임 상승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정유업체들은 배럴당 60달러가 넘는 높은 정제마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유 수입에 의존하는 아시아와 유럽 정유업체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미국 정유업체들도 운송비 상승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경유와 항공유 등 미국에서 생산한 석유제품을 다른 지역으로 수출할 때 해상운송 비용이 증가하면서 해외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유업체들의 수익성 악화가 국제 석유제품 공급 부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4일 보고서에서 운임 상승으로 정유업체들이 세 가지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비싸진 원유 조달비용을 감수하거나, 기존 설비에 적합하지 않은 원유를 사용해 제품 생산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거나, 아예 정제 처리량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유업체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정제 처리량을 축소하면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공급도 감소하게 된다. 이미 중동과 러시아의 공급 차질로 국제 석유제품 시장이 불안정한 가운데 추가적인 생산 감소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IEA는 유럽과 아시아의 정유 수익성이 추가로 악화하면 일부 정유시설이 가동량을 줄이면서 연말까지 석유제품 시장의 공급 부족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