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봉한 영화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주인공 피터 파커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남긴 스마트 안경을 쓰고 인공지능(AI) 비서 '이디스'와 소통한다. 안경을 쓰는 것만으로 눈앞에 각종 정보가 펼쳐지고, AI는 필요한 순간마다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당시만 해도 영화 속 상상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7년. 스크린 속 상상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스마트 안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패션업계와 손잡고 스마트 안경을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디자인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블랙핑크 리사와 협업한 메타의 AI 안경은 9월28일 국내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메타가 자체 브랜드 '메타 글래스(Meta Glasses)'로 선보인 리사 에디션은 약 64만원에 판매된다. AI 기능뿐 아니라 협업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활용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려는 시도로 보인다.
앞서 메타는 6월 미국 인플루언서 카일리 제너와 협업해 '카일리 에디션'을 공개했다. 또 올해 말까지 레이밴·오클리·메타 글래스를 합쳐 100종 이상의 스타일을 제공하겠다고 9월23일 밝혔다.
메타는 이전부터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스마트안경 시장을 앞장서 개척해 왔다. 2021년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레이밴과 협력해 첫 스마트 안경 '레이밴 스토리즈'를 선보였고, 2023년 AI 기능을 강화한 레이벤 메타를 출시했다. 2025년에는 스포츠 아이웨어 브랜드 오클리와 협업 제품을 내놓은 데 이어 올해 자체 브랜드 메타 글래스를 선보이며 제품군을 확대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 7월 '개인 맞춤형 초지능' 비전을 제시하며 개인의 상황과 목표를 이해하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AI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저커버그 CEO는 사용자의 주변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안경은 스마트폰 이후 AI를 활용하는 새로운 접점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메타만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는 건 아니다. 삼성전자와 구글도 패션 브랜드와 손잡고 AI 안경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이 안경을 공동 개발하고, 젠틀몬스터와 미국 안경 브랜드 워비파커가 제품 디자인에 참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기술과 구글의 운영체제·AI 기술에 두 브랜드의 디자인 역량을 결합한 셈이다.
구글은 앞서 2025년 6월 젠틀몬스터 운영사인 아이아이컴바인드에 1억 달러(약 1450억원)를 투자해 지분 약 4%를 확보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22일 삼성전자와 구글이 개발한 AI 안경 '인텔리전트 아이웨어'를 연내 출시할 것이라 밝혔다.
빅테크 기업들이 패션 브랜드와 협력해 AI 안경에 기술뿐 아니라 패션을 입힌다고 해서 탄탄대로가 열리는 건 아니다. 특히 착용 편의성과 안전성, 일반 안경에 비해 제한적인 디자인, 사생활 침해 등은 AI 안경의 대중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안경은 얼굴에 직접 착용하는 제품인 만큼 얼굴과의 조화, 무게, 코받침 구조, 장시간 착용했을 때의 편안함이 구매와 반복 사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카메라와 배터리, 스피커 등 전자기기 부품을 안경테에 탑재하면서도 일반 안경에 가까운 외관과 착용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용자들의 착용 후기를 보면 디자인과 사용 편의성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한 네이버 블로거는 '레이벤 메타 GEN2' AI 안경을 착용한 뒤 "전반적으로 테가 두꺼운 뿔테안경이고 코 받침이 없는 타입이라 코 낮은 사람은 광대가 닿겠다"고 적었다. 중국 브랜드 '로키드'의 AI 안경을 착용해본 한 이용자는 소셜미디어 엑스(X, 옛 트위터)에서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어지러움과 눈의 피로를 느꼈다"고 전했다.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25년 학술지 '인체공학(Ergonomic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지원자 80명을 대상으로 화면 표시형 AI 안경 사용에 따른 영향을 실험했다. 연구진은 AI 안경 사용시 시야 범위가 줄어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정도가 저하됐으며, 화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주의가 분산되고 눈의 불편감이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일반 안경과 비슷한 외관은 AI 안경 대중화의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사생활 침해 우려도 키운다. 착용자가 주변 사람의 동의 없이 사진이나 영상을 촬영하거나 음성을 녹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AI 안경에 대한 프라이버시 규제가 각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10월 5일 학교와 의료기관, 쇼핑몰, 공원 등 일부 장소에서 AI 안경 사용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호주주는 공립학교에서 AI 안경 사용을 금지했고, 미국 뉴욕주도 법원에서 AI 안경 착용을 금지하는 등 일부 국가들은 무단 촬영·녹음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AI 안경 사용 공간을 단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대학 시험장에서 스마트 안경을 이용한 부정행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시험장에서 AI 기기 사용을 어떻게 확인하고 규제할지에 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빅테크가 패션의 영역으로 발을 넓히는 가운데 AI 안경의 대중화는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디자인과 착용감, 사회적 수용성을 함께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