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대 국적선사인 HMM이 부산에 본사 사무실을 열며 '부산 시대'를 본격적으로 개막했다.
다만 실질적인 본사 기능을 이전했다고 보기에는 서울 여의도 인력의 이동이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간판만 이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부산 본사에는 HMM 국내 직원 900여 명 중 13% 정도인 120명이 근무하는데, 이 가운데 기존 부산영업본부 직원이 90명을 차지한다. 서울에서 이동한 직원은 30여 명에 그친다.
회사 쪽은 앞으로 사내 공모 등을 통해 추가 인원을 배치한다는 계획이지만, 실제로 부산 이동을 원하는 직원이 많지 않을 경우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정주 여건 등을 두고 내부 갈등이 일어날 소지도 있다.
이와 함께 화주 영업과 선박 금융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울 조직이 존속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외부에서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최원혁 대표이사 사장은 이 같은 상황을 잘 조율해 이전 인력 규모와 속도, 기능별 배치를 설계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3일 열린 HMM 부산 본사 현판 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이재명 대통령, 최원혁 HMM 대표이사 사장, 전재수 부산시장 순. ⓒ 연합뉴스
◆ 국정과제부터 실제 이전까지
1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HMM은 부산 부전동에 임시 본사 사옥을 마련하고 12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다음날인 13일에는 부산 시대 개막을 알리는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이재명 대통령, 황종우 해양수산부 장관, 전재수 부산시장,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 안병길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등 초청 인사들과 최원혁 HMM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참석했다.
HMM 이전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정부의 정책인 '해양수도 부산 육성'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HMM은 부산항을 주요 거점으로 활용하는 국적선사이자 공기업인 한국산업은행(35.42%)과 한국해양진흥공사(35.08%)가 대주주인 회사여서, 해운 물류 중심지인 부산으로 본사를 옮겨 관련 산업의 집적 효과를 꾀해야 한다는 명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노조의 반대로 본사 이전 추진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전에 반대하는 육상노동조합과 사측의 교섭이 결렬되고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도 성과 없이 종료되는 등 극심한 갈등이 드러났다.
하지만 파업 문턱까지 이른 4월30일 노사가 본사 부산 이전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갈등이 일단락됐다. 국토균형발전, 지방분권 강화 등 사회적 대의에 동참하고, 중동전쟁으로 글로벌 물류 상황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자는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동 방식에 대해서는 대표이사실을 우선적으로 이전하고 직원들의 이동은 추후 논의해 나가자는 수준의 합의가 이뤄졌다.
이에 5월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본점 소재지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변경하는 정관 변경 안건이 통과됐고, 같은 달 22일 법인 등기부등본상 본사 주소지를 서울 여의도에서 기존 부산영업본부 건물이 있는 부산 동구 초량동으로 공식 이전했다.
7월에는 공간이 부족한 초량동 사무실 대신 부산진구 부전동 DB손해보험 빌딩 4개 층 임차 계약을 맺고 임시 사옥을 조성했다. 임시 본사 사옥은 200여 명이 근무할 수 있는 규모다.
◆ 직원 이동에서 본사 이전까지 과제 산더미
'부산 시대'가 시작됐지만 문제는 아직 서울에 있는 조직과 임직원들의 추가 이동에 관해 결정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최원혁 사장은 △어떤 조직과 어느 정도 규모의 직원이 이전할 것인지 △이동하는 직원들의 정주 여건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구체화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아울러 신사옥 건립 로드맵도 수립해 나가야 한다.
우선 이번에 부산 본사로 이전한 인력은 최원혁 사장과 안전보건본부·해사실 소속 30여 명이다. 핵심 조직인 전략기획, 재무, IR 부서와 영업·금융 조직은 여전히 여의도 사옥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노사 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대형 화주와 선박금융 네트워크가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을 고려해, 영업과 금융 부문을 지점 형태로 서울에 남기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회사 쪽은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동하는 직원들의 정주 여건 지원도 과제다. 실제로 노조는 주거나 자녀 교육 등 실질적 정주 여건 지원책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한 인력 이동이 추진되는 경우 직원들의 이탈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본사 사옥 건립도 과제다. HMM은 북항 재개발 1단계 구역 내에 랜드마크급 사옥을 건립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이 구상은 아직 행정·실무적으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부산 지역사회에서는 앞으로 부지 확보와 매입, 인허가 절차, 설계·시공까지 고려할 때 완공 시점은 빨라도 2030년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