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마라톤 시즌이 절정에 달한 시점에 전해진 안타까운 비보는 기록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려는 기록 경쟁에 몰두하기 보다 자신의 체력과 건강 상태에 맞춰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라톤 대회 결승선 인근에 흰 국화 한 송이가 놓여 있는 모습. ⓒAI 합성 이미지
12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8시 49분쯤 서울 종로구 관철동 인근에서 열린 '2026 서울달리기(서울레이스)' 대회 도중 20대 여성 참가자 A씨가 하프마라톤 코스 20.6㎞ 지점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현장에 있던 대회 관계자가 즉시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지만, A씨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치료를 받던 A씨는 끝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레이스 조직위원회는 1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A씨의 부고를 알렸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숨진 여성이 과거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실력파 러너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꾸준한 훈련으로 실력을 쌓아온 숙련된 러너에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한 달리기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다.
10월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부근에서 열린 제23회 강남국제평화마라톤에서 참가 선수들이 출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러닝 열풍과 맞물려 전국 곳곳에서는 마라톤 대회가 잇따르고 있다. 러닝 대회 일정 플랫폼 '러닝온'에 따르면 올해 10월 전국에 등록된 마라톤·러닝 대회는 78개에 달한다. 주말마다 10㎞부터 하프마라톤(21.0975㎞), 풀코스(42.195㎞)까지 다양한 대회가 열리면서 개인 최고 기록을 뜻하는 'PB(Personal Best)'에 도전하는 러너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문제는 기록 단축에 대한 욕심이 자칫 무리한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충분한 휴식과 회복 없이 고강도 달리기를 반복하거나 자신의 체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속도와 거리를 늘리면 신체에 부담이 누적될 수 있다. 특히 평소 건강에 자신 있는 젊은 층일수록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가볍게 여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개천절인 10월3일 강원 춘천시 남산면 엘리시안강촌 리조트에서 열린 2026 춘천연합마라톤에서 참가자들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심장 운동 전문가 이종영 교수는 지난 7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나친 고강도 러닝이 심혈관계에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 교수는 과도한 고강도 운동으로 심장이 커지거나 혈관이 딱딱해지는 등 변화가 나타날 수 있으며, 심부전과 동맥경화, 혈관박리 등 심혈관질환의 위험성이 높아져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젊다는 이유만으로 심장 건강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달리기 도중 응급실로 이송된 환자 가운데 20~30대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20~30대 젊은 심근경색 환자들은 대부분 새벽에 러닝하다가 실려온다"고 말했다.
10월11일 오전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울산소방본부 구급대원이 2026 울산마라톤대회 도중 탈진한 참가자를 응급처치하고 있다. ⓒ울산소방본부 제공.
물론 마라톤 대회 도중 참가자가 쓰러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부정맥이나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이상으로 심정지가 발생할 수 있으며, 장시간 달리면서 체온이 지나치게 상승하는 열사병이나 탈수, 혈압 저하 등으로 의식을 잃는 경우도 있다. 운동 중 수분을 과도하게 섭취해 혈중 나트륨 농도가 낮아지는 저나트륨혈증 역시 심각한 응급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가 유튜브 채널 '황영조형'에서 러닝화 선택과 건강한 달리기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황영조형 유튜브 채널
러닝은 기록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스포츠지만, 기록 경쟁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오히려 몸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록 단축 열풍은 러닝화 선택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부터 러너들 사이에서는 달리기 효율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카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탄소섬유판과 발을 디딜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되돌려주는 특수 소재를 적용한 러닝화다. 다만 발 모양이나 달리는 방식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신체에 부담을 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마라톤 영웅' 황영조 역시 기록보다 꾸준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4월 25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황영조형' 영상에서 자신의 발에 맞지 않는 카본화 착용을 경계하며 "80세까지 러닝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어 "유행 타가지고 붐이 일어났다가 식어버리는 그런 러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며 "우리 오래오래 러닝하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