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겨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의 전력망을 집중 공격하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위기에 직면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으로 맞서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디젤 공급 거래를 추진하면서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공격 중단을 압박하고 있다.
전쟁의 핵심 전선이 에너지 기반시설로 확대되는 가운데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갈등까지 격화하는 양상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AFP통신=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디젤 거래가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을 흔들고 있으며, 러시아의 에너지시설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와 영국 가디언, 월스트리트저널이 12일(현지시각) 전했다.
러시아는 최근 제트 추진 드론과 탄도미사일을 동원해 우크라이나의 발전소와 송전시설을 집중 공격하고 있다. 전력 공급이 끊기면 난방과 급수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어 겨울철 민간인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는 12일 우크라이나 에너지시설 6곳을 공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33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도 대규모 정전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국의 에너지시설 공격 중단 제안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석유 정제시설을 공격하며 대응하고 있다. 정유시설은 러시아군의 연료 공급과 러시아 에너지 수출을 뒷받침하는 핵심 시설이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자국 전력망에 대한 공격을 억제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전쟁 수행능력을 약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블라드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러시아와 디젤 거래 : 우크라이나엔 공격 중단 압박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9일 플로리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유럽 관계자들과의 회담에서 러시아산 디젤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측이 공격 중단에 따른 대가를 묻자 미국 측은 이미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정보 지원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에 필수적이라는 언급도 나왔다. 일부 참석자는 이를 지원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는 압박으로 받아들였지만, 미국 당국자는 위협이 있었다는 해석을 부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양국이 즉각적인 '에너지 휴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양측 모두 합의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러시아 역시 휴전 이행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우크라이나 에너지시설 공격을 이어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바르샤바에서 열린 안보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러시아가 겨울철 에너지 휴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제재 완화에도 디젤값 안정 불투명 : 유럽은 반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거래에 나선 배경에는 미국의 높은 연료 가격이 있다. 이란 전쟁으로 중동의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발생한 데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까지 겹치면서 디젤 가격이 급등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의 디젤 평균 소매가격은 12일 갤런(약 3.8리터)당 약 6.27달러로, 지난해보다 71%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디젤에 대한 제재를 완화해 공급을 늘리겠다는 구상이지만, 전문가들은 가격 안정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거래로 공급될 물량은 10월 하루 약 10만 배럴, 11월 약 12만5천 배럴 수준이다. 러시아가 지난해 하루 약 80만 배럴을 수출했던 것과 비교하면 적은 규모다.
연료판매업체 테시칸 내추럴가스의 캐롤라이나 지역 대표 오브리 힐리어드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수출제한을 완화해 공급을 늘리더라도 전 세계 공급 부족에 비하면 극히 적어 상당한 비용완화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제한하는 기존 법률에 이번 거래가 위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지도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러시아의 휴전 이행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습으로부터 전력망을 지키면서 미국의 외교적 압박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올겨울 전쟁의 향방은 동부전선의 전투뿐 아니라 에너지 기반시설을 둘러싼 공방과 미국 및 유럽의 지원 정책에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