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이른바 '나르시시스트 상사'가 재택근무를 꺼리는 이유는 직원의 생산성보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지키려는 욕구에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7월 국제학술지 '조직행동과 인간의사결정과정(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에 실린 '회사에선 나를 떠받들어라: 자기애 강한 상사가 재택근무를 싫어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갑질하는 상사와 고통받는 직원들. ⓒAI 합성 이미지
연구진은 미국 포천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 259명을 분석하고, 관리자 3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관리자 546명이 참여한 실험도 진행했다. 그 결과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리더일수록 재택근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직원들을 직접 마주하는 대면근무가 리더의 권력과 지위에 대한 욕구를 채우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런 리더십은 직원들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7월17일 미국 경영학회 학술대회 논문집에 공개된 호주 울런공대학교(University of Wollongong) 연구진의 연구에서는 호주 직장인 502명을 조사했다. 그 결과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상사 밑에서 일할수록 감정적으로 쉽게 지치고 심리적 자원도 줄어들면서 직장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과 활력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국내 연구진도 비슷한 문제에 주목했다. 중앙대 연구진은 지난 2월25일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사이콜로지(Frontiers in Psychology)'에 중국 중소기업 직원 445명과 84개 팀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상사일수록 직원들의 혁신행동이 위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중심적이고 통제적인 리더십이 직원들의 심리적 자원을 소진시키고 회복탄력성을 떨어뜨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실행하려는 행동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다만 동료들이 서로 돕고 지지하는 팀에서는 이러한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직원 개인의 회복탄력성과 동료 간 지지적인 조직문화가 자기애적 리더십의 폐해를 완화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직장인들 역시 직장 내 괴롭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7월12일 공개한 조사에 따르면 전국 직장인 1천 명 중 32.1%가 최근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괴롭힘을 경험한 응답자의 55.1%는 별다른 대응 없이 참거나 모르는 척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 내 갑질을 문제로 인식하는 감수성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직장갑질119가 8월23일 발표한 조사에서 직장갑질 감수성 지수는 2023년 72.5점에서 2026년 63.5점으로 9점 하락했다. 특히 중간관리자의 감수성 지수는 59.8점으로, 일반사원(66.2점)과 상위관리자(61.6점)를 포함한 직급별 집단 가운데 가장 낮았다.
그렇다면 자기애적 성향의 상사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7일 직장·리더십 뉴스레터 '워킹 잇(Working It)'에서 갑질 상사(Toxic Boss, 독성 상사)에 대응하는 세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심리치료사이자 임원 코치인 캐슬린 색스턴에 따르면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일부 리더는 면접장에서 넘치는 자신감과 화려한 언변으로 면접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성과는 자신의 공으로 돌리면서도 일이 틀어지면 책임을 인정하기보다 부하 직원이나 외부 환경에 탓을 돌리는 식이다.
색스턴이 제안한 대응법은 세 가지다. 회사에 남되 부당한 요구에는 선을 긋는 '스테이(Stay)', 부서 이동이나 사내 인맥을 활용해 자신을 보호하는 '플레이(Play)', 필요하다면 동료들과 힘을 모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슬레이(Slay)'다.
첫 번째는 회사를 떠나지 않되 참아서는 안 될 행동에 분명히 선을 긋는 방법이다. 상사의 모욕적인 말이나 주말까지 이어지는 업무 연락을 무조건 받아주지 않는 식이다.
두 번째는 조직 안에서 살길을 찾는 전략이다. 다른 부서로 옮기거나 사내 인맥을 활용해 부당한 대우를 피하고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동료들과 힘을 모아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이다. 혼자 항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이사회나 경영진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알리는 방식이다.
색스턴은 무엇보다 갑질 상사에게 혼자 맞서지 말라고 강조했다. 개인이 홀로 버티거나 싸우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경영진의 부당한 행동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캐슬린 색스턴은 지난 9월 출간한 저서 'Sly and Mighty(교묘하고 강력한)'에서 자기애적 성향과 공감 능력 부족, 과도한 통제 욕구가 결합한 리더십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런 리더십은 직원들의 자신감을 갉아먹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가로막으며 조직 전체에 불안과 침묵을 퍼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색스턴은 유해한 권력관계를 조기에 알아차리고, 부당한 행동에 선을 그으며, 스스로를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