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미국 증시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반도체를 비롯한 하드웨어 수입이 늘면서 무역 적자도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갈수록 뚜렷해질 것으로 보여, 일부 전문가들은 3분기 미국의 무역 적자규모가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 4%까지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 산업의 성장을 지지하는 동시에 무역 적자를 줄이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두 목표가 충돌하면서 난처한 상황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10월13일 미국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합동기지에서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면서 손짓하고 있다. ⓒAP통신=연합뉴스
로이터통신은 13일(현지시각) "AI 산업의 성장이 미국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한편, 실질 GDP 성장률에는 부담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AI 산업의 성장으로 미국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가 이뤄졌고, 이에 힘입어 증시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고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다 국채 수익률까지 25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증시는 여전히 강한 회복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상 최대 수준의 자본 지출과 기업 이익, 주가,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GDP 성장률은 기대만큼 강하지 않고 오히려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상품 수입 증가분 가운데 약 4분의 3은 서버와 고성능 컴퓨팅 장비 등 AI 관련 하드웨어가 차지했다.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은 8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3~2025년 AI 관련 자본 지출의 약 70%가 수입품에 쓰인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인구조사국과 경제분석국이 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8월 무역 적자는 1056억 달러(약 141조 원)로 확대돼 1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수입액이 7월보다 4.3% 증가한 4208억 달러(약 562조5천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데 따른 것이다.
미국의 무역 적자 규모는 1분기에 GDP와 비교했을 때 2.7%, 2분기에 3%까지 이르렀다.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기업들의 AI 관련 장비 지출이었다. 8월 무역수지 자료와 항공기·방위산업 관련 품목을 제외한 자본재 수주·출하 동향을 보면, 이러한 지출이 3분기에도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통신은 3분기 미국의 무역 적자 규모가 GDP에 비교해 4%까지 이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자산운용사 포인트72의 딘 마키 이코노미스트도 이러한 분석에 동의했다. 그는 로이터통신에 "이는 구조적인 문제다"며 "이 정도 규모의 무역 적자는 지속될 것이며, 앞으로 1년 동안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마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자본재 수입 증가의 대부분은 컴퓨터와 반도체, 주변기기, 통신 장비 등 AI 관련 수요 증가에서 비롯됐다. 그는 AI 관련 지출이 계속 늘어난다면 미국의 무역 적자는 확대되고 실질 GDP 성장률은 완만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기업들의 지출은 주로 아시아 테크 기업으로 흘러가고 있다. 세계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는 8일 3분기 영업이익 잠정치가 107조4천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분기 기준 사상 최고 실적에 해당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도 3분기 매출이 467억 달러(약 64조4천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외교협회의 브래드 세처 선임연구원은 한국과 대만의 9월 무역수지 흑자를 합산하면 연간 환산치가 8천억 달러(약 1069조2천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2년 전 두 나라의 흑자를 합한 1천억 달러(약 134조2천억 원)에서 크게 늘어난 규모다. 세처 연구원은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두 나라의 연간 무역수지 흑자 합계가 내년에는 1조 달러(약 1336조6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난제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AI 산업의 발전을 지지하며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동시에 세계 각국이 수십 년간 미국을 착취해 왔다고 주장하며, 무역 적자를 줄이기 위해 관세 전쟁을 벌여 왔다.
그러나 미국 수입액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늘고 무역 적자가 확대되는 한편, 중국 등 주요 교역 상대국의 무역 흑자도 사상 최대 수준으로 커지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당초 의도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