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연합(EU)이 다음 달 정상회의를 열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경제·안보 관계 복원에 나선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가 EU 재가입 가능성까지 논의 대상으로 제시한 가운데, 이번 회담이 6년간 이어진 양측의 갈등을 넘어 실질적인 협력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앤디 버넘 영국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18일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과 유럽 주요 싱크탱크의 분석을 종합하면 영국과 EU가 다음 달 20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개최하는 정상회의를 계기로 무역장벽 완화와 안보협력 확대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브렉시트 6년, 경제적 후유증에 관계 복원 필요성 커져
영국 정부와 EU 정상회의 발표에 따르면 버넘 총리는 11월20일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만난다.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결정하고 2020년 1월 공식 탈퇴했다. 같은 해 말 전환기간이 종료되면서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서도 벗어났다. 이후 양측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지만 통관 절차와 규제 차이로 기업들의 부담이 커졌다.
영국의 EU 탈퇴에 따른 경제적 후유증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재단은 2026년 발표한 분석에서 "영국이 2019년 세계 상품 수출시장 점유율을 유지했다면 2024년 수출액이 실제보다 740억 파운드(한화 약 131조4천억 원) 많았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또한 레졸루션재단은 "브렉시트가 영국의 상품 수출 부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버넘 총리도 9월29일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브렉시트가 영국에 이익보다 피해를 더 많이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버넘 총리는 유럽과의 관계를 재정립해 경제성장과 번영을 촉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영국 런던 빅벤 앞에서 휘날리는 유럽연합 깃발. ⓒEPA=연합뉴스
식품·에너지·청년 교류 협상, 안보협력도 핵심 의제
이번 정상회의의 우선 과제는 경제협력의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버넘 총리는 지난 12일 의회에서 식품·농산물 규제 조화, 양측 탄소배출권 거래제 연계, 청년 교류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식품 검역과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고 에너지시장 협력을 강화해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을 낮추겠다는 구상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과 EU 사이 안보협력도 중요한 의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EU 정상회의 측은 양측이 국방·안보, 에너지, 기후변화, 이민과 법 집행 분야의 협력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과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협상에 걸림돌도 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에 따르면 영국과 EU는 지난해 EU의 공동 방위조달 금융지원 프로그램인 SAFE 참여 문제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SAFE(유럽안보행동)는 EU가 회원국의 무기 공동구매와 방위산업 육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전체 1500억 유로(약 224조8천억 원) 규모의 저리 대출 프로그램이다. EU 역외국도 일정 조건 아래 참여할 수 있지만, 영국은 자국 방산업체의 참여범위와 재정 분담금 등을 둘러싸고 EU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안보협력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참여 조건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여전히 엇갈리는 셈이다.
EU 재가입까지 거론한 버넘, 정치적 장벽 넘을까
버넘 총리는 단기적인 무역협상을 넘어 EU와의 장기적 관계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9월30일에는 EU 재가입을 포함한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재가입을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당 정부는 차기 총선 전까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복귀하거나 자유로운 인적 이동을 재도입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야당 보수당도 브렉시트 합의를 훼손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EU 역시 영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유럽정책센터(EPC)는 올해 5월 보고서에서 "영국과 EU의 관계 개선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협력에는 여전히 상당한 공백이 있다"며 "단순히 기존 합의를 점검하는 수준을 넘어 무역·기술·안보 분야의 장기적인 협력 방향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국 이번 정상회의의 성패는 브렉시트 이전으로 돌아가느냐보다 탈퇴 이후 형성된 정치적 제약 속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협력 성과를 거두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